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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이야기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아드벡 ARDBEG" (5)

by 주류탐험가K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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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고장으로 탄생한 퍼뮤테이션

아드벡 발효조를 보면서 떠오른 제품이 하나 더 있다. 2022년 아드벡 팬클럽 커미티 한정 상품으로 나온 13년 숙성 퍼뮤테이션이다. 이 위스키는 스카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품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발효를 무려 2주 반 동안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아드벡 위스키가 발효를 사흘 내에 끝내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긴 발효 시간이다. 긴 발표 시간으로 유명한 스카파나 글렌알라키가 160시간 정도이고 스카치 업계 최장 발효를 자랑하는 토마틴도 168시간(일주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2주 반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간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길게 발효되게 된 걸까? 세상 일이 가끔 그렇듯 계획이나 의도보다는 우연의 산물이다. 

 

2007년 11월 아드벡 증류기를 가동하는 보일러가 갑자기 고장났다. 보일러를 뜯어서 고치려면 최소 2~3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증류기를 2주 이상 돌릴 수 없게 됐으니 발효종인 워시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증류실 직원은 글렌모렌지와 아드벡 위스키 책임자인 빌 럼스덴 박사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하며 워시를 폐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재로 소문난 빌 럼스덴의 반응은 의외였다. "발효중인 워시를 버리지 말라"면서 "발효조 뚜껑을 열어 공기와 접촉시킨 뒤 계속 놔두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증류기 보일러를 고칠때까지 2반 동안 발효조에서 장기 발효한 워시가 나왔다. 이걸 꺼내 증류한 뒤 버번 캐스크에 넣고 13년간 숙성한 게 퍼뮤테이션이다.

 

그렇다면 2주반 초장기 발효한 워시를 증류해 만든 퍼뮤테이션의 맛은 어땠을까? 아드벡 특유의 스모키한 풍미와 더불어 시트러스한 과일 향과 잘 익은 파인애플 풍미가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보일러 고장 때문에 탄생한 퍼뮤테이션에 대해 빌 럼스덴 연구팀에 속한 블랙모어는 인터뷰에서 "2주 반 동안이나 발효를 할 수 있었던 건 날씨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온도가 낮아서 워시를 망치지 않고 발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오늘의 비가 내일의 위스키"

아드벡은 2019년에 증류실을 새로 지었다.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한 쌍(1차 증류기 1대, 2차 증류기 1대)이던 증류기를 두 쌍으로 늘렸다. 하지만 해안가 바로 앞 공터에 지은 새 증류기를 두 쌍으로 늘렸다. 

 

하지만 해안가 바로 앞 공터에 지은 새 증류실은 코로나가 터져 2년 동안 문을 열지 못했다. 증류기 두 쌍을 갖춘 새 증류실이 가동된건 2021년 3월 부터였다.  새 증류실로 가기 전에 지금은 쓰지 않는 구형 증류기부터 먼저 살펴보면 더이상 스피릿 생산을 하지 않는 옛 증류실은 테이스팅 룸으로 활용되고 있다. 작동은 멈췄지만 증류기 2대는 원래 자리에 남아 있다. 쓸모가 없어진 스피릿 세이프를 비롯해 스피릿을 담아두는 나무통 하나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구형 증류기는 구리가 너무 얇아서 중고로 팔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놔뒀다"고 한다. 가동 중단된 생산 시설을 없애지 않고 테이스팅 공간으로 꾸민 아이디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우면서도 거대한 증류기를 바라보며 위스키를 마시는 경험은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스코틀랜드는 햇살이 쨍쨍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오고 그러다가 이제는 그쳤구나 싶으면 또 비가 쏟아진다. 

 

증류실사람은 "비가와야 위스키를 만든다. 우리는 위스키를 위해 비가 필요하다. 올 여름에 비가 안 와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우리는 비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드벡은 증류소 근처에 있는 호수 두 곳에서 물을 끌어와 위스키를 만든다. 그 중 하나는 제품 이름으로 쓰여 익숙한 우가다일 호수이고 또 하나는 아리 남 바이스트 호수이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땅에 스며들어 샘이나 호수로 흘러든다. 그렇게 모인 물로 증류소에선 위스키를 만든다. 비가 오지 않아 샘과 호수가 마르면 위스키도 못 만든다. 그렇다보니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증류소 사람들은 밤잠을 설친다.

 

"오늘의 비가 내일의 위스키가 된다"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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