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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이야기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보모어 BOWMORE" (1)

by 주류탐험가K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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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랑한 위스키

배를 만들어 처음 물에 띄울 때 진수식이나 명명식을 한다. 그때 마다 여성이 샴페인 병을 배에 내리쳐 깨뜨리는 걸 볼 수 있다. 정식 출항에 앞서 샴페인 병을 박살내야 배가 난파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샴페인 브레이킹으로 불리는 이 전통은 역사가 300년을 넘었다. 처음엔 새로 건조한 배에서 술잔을 바다로 던져서 버렸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샴페인 병을 여성이 깨뜨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희한한 이 전통 때문에 해프닝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1994년 핵잠수함 콜럼비아호 진수식이다. 당시 세리머니 주인공은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였다. 힐러리는 샴페인 병을 들고 힘차게 잠수함에 내리쳤지만 병은 깨지지 않았다. 또 한번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실패. 당황한 힐러리는 다시 온힘을 내리쳤다. 병은 그제야 깨졌다. 세 번 만에 병을 깬 이 장면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름부터 '샴페인 브레이킹'이니까 당연히 샴페인을 깨뜨리는 게 맞다. 하지만 샴페인이 아닌 싱글몰트 위스키로 의식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2014년 7월 4일에 열린 '퀸 엘리자베스' 명명식 때였다. 영국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엘리자베스 1세(1558년~ 1603년 재위) 이름을 딴 항공모함이었기에 명명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참석했다. 스코틀랜드 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서 여왕은 축사를 마친 뒤 단상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 술병을 깨뜨리는 의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선택한 술은 샴페인이 아니었다. 아일라 싱글몰트 위스키 보모어였다. 

 

"최고의  아일라 위스키"

영국 왕실과 보모어의 인연은 오래됐다. 1841년. 아일라섬 주인 월터 프레데릭 캠벨한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윈저성에서 보낸 것이었다. 영국 왕실에서 왜 아일라 지주에게 연락을 한 걸까? 편지를 뜯어보니 거기엔 왕실 가족이 윈저성에 머물 때 마실 위스키를 납품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아일라 최고의 위스키가 담긴 오크통 하나를 보내달라"면서 "오크통 크기와 가격은 상관없지만 반드시 최고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자 그렇다면 1841년 영국 왕실에서 작성한 편지에 등장하는 '아일라 최고의 위스키'란 뭘 말하는 걸까? 당연히 보모어였다. 

 

이런 때문인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80년 8월 보모어 증류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가 왕이 된 스카치 증류소를 찾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보모어에서는 여왕이 방문한 날에 생산한 스피릿을 오크통에 담아 '여왕의 캐스크'라고 이름 붙였다.

 

여왕의 캐스크는 증류소 1번 숙성고에서 조용히 잠을 잤따. 그렇게 21년이 흘렀다 .보모어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50년(골든 주빌리)이 된 2002년에 캐스크를 열었다 .일일이 수작업(핸드필)으로 '여왕의 캐스크' 위스키를 648개 병에 옮겨 담았고 특별한 포장까지 해서 버킹엄 궁으로 보냈다. 여왕은 선물받은 보모어 21년 숙성 위스키를 국빈 방문한 해외 정상을 위해 연회 때 내놓거나 귀빈한테 증정했다 또 해마다 세 병은 자선 단체에 기증해 기금 마련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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