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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가불린 LAGAVULIN" (3) 피트 가득한 물 라가불린 증류소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포트 엘런 항구부터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타고 달리면 바다 경치가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창문을 열자 짭조름한 아일라 바다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창문을 열면 짭조름한 아일라 바다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낭만적인 해안도로에서 빠져 좁은 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벽이 하얗게 칠해진 라가불린 증류소가 나타난다. 석탄을 연료로 쓰던 시절의 유산인 빨간 굴뚝이 터줏대감처럼 우뚝서 있고 쌍둥이 파고다 루프도 멋스럽고 고풍스럽다. 건물 옆에 폭포수처럼 콸콸 흘러내리는 물길이 보인다. 증류소 북쪽 산에있는 호수에서 흘러온 물이다. 라가불린은 아일라 땅 피트를 듬뿍 머금어 갈색 빛깔인 이 물로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라가불린처럼 피트 가.. 2024. 1. 3.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가불린 LAGAVULIN" (2) "탁월하게 좋은 위스키" 라가불린은 게일어로 '방앗간의 움푹 들어간 곳' 이란 뜻이다. 실제로 가보면 바다가 육지로 푹 파고 들어온 라가불린만에 증류소가 있다. 이 일대는 아일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2세기에 바이킹을 물리치고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을 장악은 소머레드 왕이 라가불린만에 있던 더니벡성에 살았기 때문이다. 유명 가문 맥도날드 클랜의 창시자이자 아일라섬 최초 군주였던 소머레드가 머물던 더니벡성 잔해는 지금도 증류소 앞에 남아 있다. '아일라의 왕자'로 불리는 라가불린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증류소가 있는 곳에서는 1742년부터 위스키 증류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수확하고 남은 보리로 몰래 위스키를 만들던 불법 농장 증류소였다. 그러다가 1816년에 이르러 존 존.. 2024. 1. 2.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가불린 LAGAVULIN" (1) 화이트 호스와 피터 맥키 춘원 이광수의 소설[흙]에 나오는 한 장면.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출신 갑진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건영을 낙원동 카페로 데리고 들어간다. 이때 갑진은 위스키를 주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병째로 가져오너라. 백마표. 응? 1932년 당시 [흙]을 연재한 동아일보 삽화에는 카페 탁자에 놓은 백마표 위스키 병도 그려져있다. 소설에서 식민지 조선의 부유한 엘리트 계층이 즐기는 술로 등장하는 백마표는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 화이트 호스였다. 브랜드 이름처럼 상표에 하얀 말이 그려져 있다. 1891년에 출시된 화이트 호스는 1908년에는 영국 왕실 납품 허가까지 받을 만큼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1930년대 조선 경성에서도 즐긴 화이트 호스를 탄생시킨 사람은 앞서 라프로익 편에 잠깐 등.. 2024. 1. 1.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7) 바다 경치를 보며 라프로익을 숙성고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환상적인 경치가 다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잔잔하게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와 LAPHROAIG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증류소 회색 벽이 정겹게 어울린다. 증류소에서 그럴싸하게 포즈를 잡고 사진 찍는 걸 싫어하지만 여기서만큼은 딱 한 장 찍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라프로익 테이스팅은 입이 즐겁기 이전에 눈이 즐겁다. 클레어가 안내한 프라이빗 테이스팅 룸은 바다 경치가 하눈에 잡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면 '깡소주'도 맛있게 느껴질 것 같다. 테이스팅 룸 바로 옆에 있는 증류소 운영을 총괄하는 매니저 방도 보인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여다보면 라프로익의 두 영웅, 이언 헌터와 베시 윌리엄슨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클레어는 "매니저가 허튼.. 2023. 12. 27.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6) 피트를 사람이 직접 캐는 이유 라프로익이 쓰는 피트는 아일라 공항 근처 피트 밭에서 4월부터 9월 사이에 캐낸다. 보모어나 다른 증류소에선 콤바인처럼 생긴 기계로 채굴하지만 라프로익은 사람이 캔다. 왜 기계를 쓰지 않는지에 대해 "사람이 직접 캐야 더 축축한 피트를 퍼올릴 수 있어서"라고 한다. 사람이 직접 피트를 캘 때는 피트 커터라고 부르는 채굴 도구를 사용한다. 피트 커터를 땅에 깊숙이 찔러넣어 덩어리로 잘라낸 뒤 쇠스랑이나 삽으로 떠낸다. 마침 아궁이 옆에 피트 커터를 보니 끝부분에 뾰족한 뭔가가 달려 있었다. "진짜 하일랜드 소뿔을 장식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피트커터를 설명하면서 "이 장비로 5~6피트(1.5~1.8m)깊이까지 파서 피트를 캐낸다. 피트가 1년에 1밀리미터 정도 퇴적되는 걸 .. 2023. 12. 26.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5) 축축한 피트를 쓰는 까닭 발아가 된 몰트는 대형 가마가 있는 건조실에서 말린다. 이때 피트를 땔감으로 써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를 통해 피트 풍미가 몰트에 배어든다. 이렇게 만든 피트 몰트로 당화와 발효, 증류, 숙성을 마치면 라프로익 같은 위스키가 탄생한다. 몰트 건조는 피트 위스키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공정인 셈이다. 피트 몰트를 건조할 때 가장 흔한 방법은 석탄을 때서 몰트를 조금 말려 놓고 그 다음에 피트로 불을 지켜 향을 입힌 뒤 마지막에 다시 석탄으로 건조를 마치는 것이다. 하지만 라프로익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발아된 몰트를 가마에 넣고 바로 피트부터 태운다. 총 12시간 피트 연기를 충분히 입힌 다음에 뜨거운 공기를 20시간동안 불어 넣어 몰트를 건조한다. 라프로익에서는 바.. 2023. 12. 25.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4) 찰스왕의 위스키 증류소의 방문자 센터로 들어가면 전시실처럼 꾸며져 있다. 센터 벽에는 이언 헌터와 베시 윌리엄슨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옆에는 지금은 영국 국왕이 된 찰스 3세 사진도 여러 장 보다. 왕세자 시절 라프로익에 찾아온 찰스가 숙성고에서 망치로 오크통 마래를 여는 모습이라든가 플로어 몰팅을 체험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이다. 증류소에 전시된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라프로익은 찰스 왕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찰스가 처음 이 증류소를 찾은 건 1994년 6월 29일. 김원곤 선생님이 쓴 [세계지도자와 술]이란 책에 따르면 당시 찰스 왕세자는 원래 20분만 라프로익에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타고 온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2시간 반이나 증류소에 있게 된다. 찰스는 이때 라프로익 제조.. 2023. 12. 24.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3) 라프로익이 약으로 수출된 사연 라프로익을 처음 맛본 사람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콜록콜록 기침을 하거나 심지어 코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잠깐 향만 맡아도 '병원 냄새' 혹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라프로익에서는 자기네 위스키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의 반응만 모아 홍보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희한한게 있다. 처음에 질색을 하던 이들 중에 몇몇은 특유의 향과 맛에 빠져 마니아가 된다는 사실이다. 중독성이 강해 한번 맛들이고 나면 계속 찾게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Love or Hate", '아주 좋아하거나 아니면 증오하거나'라는 문구이다. 라프로익이 소독약 같은 풍미를 지닌 까닭에 미국 금주법 시기에 희한한 일도 일어난다. 위스키 같은 증류주가 오랜 세월 의.. 2023. 12. 19.
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라프로익" (2) 사활을 건 물 전쟁 위스키는 물 없이는 못 만든다. 당화에 필요한 제조 용수뿐만 아니라 설비 가동을 위해서도 엄청난 물(냉각수)이 필요하다. 그런데 20세기 초 라프로익에서는 물이 끊겨 증류소를 가동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사건은 1908년에 벌어졌다. 바로 이해에 창업자 도널드 존스톤의 즈온자인 이언 헌터가 글래스고에서 연수를 마치고 아일라섬에 돌아와 증류소 매니저가 된다. 혈기왕성하고 의욕에 찬 이언 헌터는 증류소를 맡자마자 70년 넘게 라프로익 위스키 판매를 대행해온 맥키 컴퍼니와 거래를 끊어버린다. 실적과 이윤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언 헌터가 거래 중단을 선언한 맥키 컴퍼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스카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겨 위대한 피터로 불리는 ..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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