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새것, 가벼운 풍미와 묵직한 풍미 사이에서의 분투를 이야기한다. 이 지역에서 마지막 소개할 멤버이자 스페이사이드 밀집지의 최대 증류소인 이곳에 이르면 '단호함'이라는 요소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크레이겔라키는 양면의 특징을 두루두루 보여준다. 철도 주변의 증류소이고 빅토리아조 말기에 설립되었지만, 비교적 옛 방식의 전통적인 위스키 제조 방식을 고수해 오기도 했다. 이 증류소는 1890년대에 블렌더들과 중개상들의 합작으로 세워진 증류소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순전히 이 지역의 수송망 때문이었다. 이곳은 주요 철도 교차점이었고 1863년 무렵엔 스트라스스페이 철도로 더프카운, 키서, 엘긴, 로시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크레이겔라키
철도는 위스키를 다른 지역으로 실어다 주는 동시에 원료와 방문객을 데려오기도 했다. 중후한 크레이겔라키 호텔도 1893년에 철도역 인근 호텔로 세워진 곳이었다. 처음부터 크레이겔라키 증류소에 지분이 있었던 블렌더이자 화이트 호스 스카치 위스키(White Horse Scotch Whisky)와 라가불린의 소유주였던 피터 맥키(Peter Mackie) 경은 1915년에 크레이겔라키의 지분을 완전히 사들였다. 이 증류소가 사업이 꾸준히 확대˙확장되는 가은데도 고유의 독자성을 탄생시킨 것은 옛 특성을 보존해 온 덕분이다.
이곳의 뉴메이크에서는 우리의 스페이사이드 여정 내내 이어졌던 유황 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증류소에서 느껴졌던 미티한 풍미보다는 밀랍 같은 특성이 있다. 왁스 코팅된 과일 같달까? 그런 풍미가 코로 전해지다가 혀까지 덮어온다. 모든 면에서 볼 때 묵직한 위스키의 면모가 엿보이지만 또 다른 개성을 감추고 있는데 수줍기보다 능청스럽다.
"저희는 몰팅 공정에서 유황 처리를 합니다" 현 소유주 존 듀어스 앤드 선즈에서 어시스턴트 마스터 블렌더로 있는 키스 게데스의 설명이다. 이런 유황 처리 이후에는, 환류를 허용하는 크레이겔라키의 대형 증류기에서 장시간의 증류를 통해 유황을 '아주 약간' 보강한 다음 그 증기를 웜텁으로 보낸다. "구리는 유황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크레이켈라키에선 웜텁을 써서 구리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저희의 뉴메이크에는 예외 없이 유황 특성이 있고 유황을 크레이겔라키의 시그니처예요. 우리의 다른 부지 증류소에서는 이런 유황 특성을 그대로 재현시킬 수가 없어요. 전부 셸 앤드 튜브 응축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죠."
유황 영역의 경우 언제나 문제는 그 이면에 무엇을 감추고 있느냐이다. " 저희는 원하면 더 밀어붙여 미티한 풍미의 영역으로 끌고 갈 수도 있지만, 밸런스를 맞추고 있어요." 달루안과 벤리네스에서 느껴지는 그 깊은 브라운 그레이비 소스 풍미가 여기엔 없다. 크레이겔라키는 숙성될수록 이국적 과일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그와 더불에 혀에 밀랍 느낌을 일으키고, 더 오래 숙성된 제품에서는 아주 가벼운 훈연 풍미가 보강되는 듯하다.
크레이겔라키는 증류소를 역행하는 격이나 다름없는 별난 방식으로 풍미가 진전되어, 너무 익힌 양배추에서 풍기는 벌레 악취같은 냄새에서 워시백(발효조)의 달콤함으로 거꾸로 진전된다. 이런 다면적 복합성, 무게감과 과일 풍미, 묵직함과 향기로움의 병존은 블렌더에겐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또 크레이겔라키가 여전히 주연급 자리를 지키는 몰트위스키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곳의 원액은 화이트 호스 내에서 중요한 요소였고 이제는 다른 블렌딩 업체 사이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더없이 개성 넘치고 이례적인 스트라스스페이의 야누스라 할 만한 이 몰트위스키는 현재 존 듀어스 앤드 선즈의 계열로 뒤늦게야 환영받으며 들어간 후, 싱글몰트위스키 시장의 중심 무대를 차지하고 있다.
벤리네스 증류소 밀집지는 스카치위스키의 전체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증류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크레이겔라키는 이런 곳의 여정을 마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위스키의 여정이 힘 있고 현대적이며 가벼운 쪽으로 향해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증류소 밀집지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 스코틀랜드 곳곳엔은 과거가 살아 있고, 옛 방식이 지켜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땅과의 연결성은, 장소의 독자적 특색을 주된 요소로 삼아 개성을 빚어낸 수많은 위스키의 탄생을 이끌었다.
크레이겔라키 시음 노트
뉴메이크
향 : 왁스 향과 식물 향. 삶은 감자 / 전분, 가벼운 훈연 향.
맛 : 견과류 맛과 단맛에 더해, 묵직한 밀랍 풍미, 약간의 유황 향과 어우러져 있다. 묵직하게 입안을 꽉 채운다.
피니시 : 여운이 깊고 길다. 식물 풍미가 다시 감돈다.
14년 40%
향 : 옅은 황금색, 왁스 코팅된 과일, 마르멜로의 향, 풍성한 향이 느껴지다가 살구 향기와 더불어 가벼운 훈연, 봉랍, 레드커런트 향이 난다. 물을 섞으면 젖은 갈대, 스쿼시 공, 올리브 오일의 향이 올라온다.
맛 : 가벼운 코코넛 맛이 나는가 싶다가 그 느낌이 입안을 장악한다. 글리세린이 연상될 정도로 매끄러운 질감. 상큼한 과일 젤리 맛, 달달하면서도 견고하다.
피니시 : 마르멜로 풍미에서 밀가루 풍미로 이어진다.
총평 : 블렌더가 꿈꾸는 위스키이자 질감인 일품인 싱글몰트위스키.
차기 시음 후보감 : 클라이넬리시 14년, 스캐퍼 16년
1994, 고든 앤드 맥페일 병입 46%
향 : 황금색, 전형적인 기름진 향과 왁스 향, 오래된 더빈 크림(피혁용 방수 기름)과 부드러운 열대과일의 향과 함께 순간적으로 시트러스 향이 확 풍겨온다.
맛 : 왁스 코팅된 과일을 먹는 기분. 무난하면서 입안에 들러붙는 질감이 있다. 물을 섞으면 에스테르 풍미가 조금 더 진해지고 뒤로가면서 꿀/시럽의 특성이 은은히 배어 나온다.
피니시: 살짝 스파이시하면서 말린 열대 과일의 단맛이 미미하게 퍼진다.
총평: 밸런스가 좋고 열려 있다.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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