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사이드 증류소가 역사 깊은 증류소의 모조품이라면, 이곳은 진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점을 특별히 내세우지도 않는다. 크롬데일이라는 마을의 외곽에서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위치 자체가 증류소 유래의 단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사실 이렇게 오래된 증류소들은 19세기 초에 불법 증류소로 우후죽순 생겨나 농장이나 깜깜한 보시(bothy, 농장 일꾼용 간이 숙소) 같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위치에 터를 잡았던 곳들이다.
18세기말과 19세기 초, 소형 증류기를 통한 증류가 사실상 금지되었고 그로 인해 소득을 위스키에 의존하던 농촌 주민들에게 졸지에 불법행위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래서 그 시절엔 위스키를 제조하려면 속임수가 필요했다. 크롬데일 구릉지대에 감추어진 이곳의 위치는 발매낙의 밀주를 제조하던 창업자 제임스 맥그리거(James MacGregor)에게 좋은 이점으로 작용했다.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법적인 의미에서는 한 지역일지 몰라도 결코 단일 개체가 아니다, 오히려 옛것과 새것, 어둠과 밝음이 서로 대비를 이루는 곳이다. 소형 증류기, 목재 워시백과 윔텁을 갖춘 발메낙은 이런 대비에서 옛 스타일에 들며, 이런 옛 스타일의 제조 시설을 통해 위스키에 고유의 묵직하고 진중한 기운을 불어놓고 있다.
간단히 말해, '가벼움'은 증류기에서 구리와 많은 접촉을 갖는 과정을 통해 얻엊딘다. 증기와 그리 사이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스피릿은 더 가벼워지고, 응축기 사용, 더 높은 증류 온도, 컷 포인트를 높게 잡는 것도 가벼운 특성의 생성에 도움이 된다. 구리 파이프가 수조(즉, 윔텁) 속에 잠겨 있는 방식의 옛날식 응축 기술을 활용하면 증기와 구리 사이의 대화가 더 줄어들어, 결국 더 묵직한 스타일이 나오고 뉴메이크에서 보통 유황 냄새가 난다. 유황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유황은 이면의 감춰진 복합성을 엿보여 주는 성분이며, 숙성된 스피릿에는 들어있지 않다.
"저희 발메낙. 아녹(anCnoc, 녹두 Knockdhu), 올드 풀트니, 스페이번에서는 웜텁을 사용해요. 그래서 증류 과정 중에 구리와의 접촉이 많지 않지만 발효 중에 생긴 유황 성분을 지켜냅니다. "발메낙의 소유사인 인버하우스(Inver House)의 마스터 블렌더 스튜어트 하베이(Stuart Harvey)의 말이다. 이런 방식의 증류를 거치면 뉴메이크에서 익힌 채소 풍미, 미티함, 성냥불의 특성이 나타난다.
하베이의 설명을 이어서 들어보자. "유황 성분은 숙성 중에 통 내부의 그을려진면과 상호작용해요. 이 과정에서 숙성 위스키 특유의 토피, 버터스카치 캔디 풍미가 생겨납니다. 일단 여러 유황의 다양한 성분이 숙성되고 나야 뉴메이크의 다른 특성들이 빛을 발할 수 있어요. 유황 성분이 묵직할수록 숙성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발메낙은 갓 증류되었을 땐 미티 하고 숙성된면 풍부함과 묵직함을 띠는데, 이는 셰리를 담았던 통에서 장기간 숙성시키기에 이상적인 구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인버하우스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관해서는 이 증류의 제품 가능성을 묻어뒀지만, 이런 옛 방식의 풍미를 맛보고 싶다면 독립 병입 업자 제품 들을 찾아보길 권하다.
발메낙 시음 노트
뉴메이크
향 : 고기와 가죽 같은 인상의 강하고 깊이 있는 향, 양고기 육수와 잘 익은 사과의 향, 전통적 방식인 웜텁의 영향으로 부여되는 특유의 기운과 깊이가 느껴진다. 그 기운이 숙성을 거치는 사이에도 그대로 남을 듯하다.
맛 : 이국적 단맛이 입안에서 아주 묵직하고 농후하게 퍼진다. 바로 이 단맛이 발메낙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되면서 미티함이 더해지고 리필 캐스크나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되며 향기로움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 발메낙에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단맛이다.
피니시 : 긴 여운이 이어지며 훈연 풍미가 살짝 감돈다.
1979 베리 브라더스 앤드 러드 병입(2010년 병입)56.3%
향 : 짙은 황금빛. 아주 달콤한 향과 함께 초콜릿, 토피, 카카오 그림향이 강하게 느껴지다 오래 우린 아쌈 차의 향이 이어진다. 묵직하고 젖은 흙내음이 난다. 물을 섞으면 밀크초콜릿, 크리미 토피, 축축한 흙, 신말바게 향취가 느껴진다.
맛 : 첫맛에서 스파이시한 풍미가 강한다. 나뭇잎 타는 풍미가 있고 중간쯤에 졸인 과수 맛이 진하게 이어진다. 월넛 휩(walnut whip) 바닐라 초콜릿 맛도 난다. 물을 섞으면 풍기가 더 살아난다.
피니시 : 견고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살짝 드라이해진다. 말린 사과 껍질 풍미가 나다 10분쯤 지나면 건조된 꿀의 풍미가 이어진다.
총평 : 미국산 오크 통 특유의 달콤함도 발메낙의 곰 같은 특색을 미쳐 가려주기 못한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딘스톤 28년, 올드 풀트니 30년
1993 고든 앤드 맥페일 병입 43%
향 : 옅은 황금빛, 아직 오크와의 상호작용이 초기 단계임을 암시해 주는, 마른 가죽/ 새 가죽 벨트 냄새. 하드 토피 캔디, 다이제스티브 비스킷, 막 니스칠 된 목재의 향, 물을 섞으면 피어나는 흙내음
맛 : 향에서 암시되는 것보다 더 농후하다. 씹히는 듯한 질감, 희미한 곡물의 풍미가 느껴지다 그을음 연기, 너도밤나무 잎, 담뱃잎 풍미로 이어진다. 물을 희석하면 숨죽인 향이 살아나 깊이감이 더해진다.
피니시 : 오크 풍미
총평 : 여전히 화합의 과정에 있으나 증류소의 개성이 살아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더 글렌리벳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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