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2개소에 이르는 프랑스의 새로운 세대 위스키 증류 업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시점에든 프랑스의 증류 유산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만큼 프랑스는 포도 스피릿(코냑, 아르마냑), 과일 스피릿(칼바도스, 과일 오드비), 고대의 치료 약에서 유래된 허브 증류(샤르트뢰즈, 압생트), 직장인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스피릿(파스티스), 식사를 마무리 지어주는 주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기술을 쌓아왔다.
이곳 프랑스가 생산품과 장소 사이의 철학적 연계개념인 테루아를 다른 어떤 곳 보다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곳이라고 해서, 프랑스 위스키에 어느 정도 통일된 스타일이 있으려니 넘겨짚어선 곤란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프랑스 와인' 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사실상 프랑스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브루고뉴, 론, 알자스 와인, 샴페인이 있는 건데 말이죠." 글랑 아르 모르의 장도네이의 말이다. 공통된 접근법은 없더라도, 가령 브르타뉴 위스키를 알자스의 위스키와 구분 지어줄 만한 지역적 스타일은 있지 않을까?
"아니 없습니다. 브르타뉴에서는 4곳의 생산업체에서 아주 다른 4가지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고 있어요.
도네이의 증류소는 플뢰비앙의 해안에서 120m 떨어진, 브라타뉴 북쪽 연안에 자리한 곳으로, 신흥 증류소이긴 해도 현대식 숙성 방식과 더불어 옛 위스키 생산 기술도 함께 활용하고 있다. 직접 가열 방식, 원텁을 이용한 저속 증류로 뉴메이크에 질감과 무게감을 부여하는 한편 퍼스트 필 버번 캐스크와 소테른 캐스크에 숙성시키고 있다.(소테른 캐스크의 활용 분야에서 도네이는 세계를 선도한 개척자였다)
그가 만드는 위스키 2종인, 비 피트 처리의 글랑 아르 모르와 스모키한 코르노그는 모두 풍부한 마무스필에 새콤 상큼함과 특유의 짠 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네이의 목표는 켈트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현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그리고 콘월을 묶는 체인에서 글랑 아르 모르가 하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이 증류소의 위치에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아일레이에 가트브랙 증류소를 세움으로써 개인적 구상을 더욱 보강하는 중이기도 하다.
도네이의 증류소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증류소는 라니옹 소재의 와렝헴이다. 이곳은 브로타뉴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로, 1987년에 블렌디드 위스키 WB를 처음 출시한 데 이어 12개월 뒤에는 프랑스 최초의 싱글몰트위스키 아모릭을 내놓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오크 통에 투자해 여러 브랜드 제품에 변화를 줌으로써 품질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두 증류소가 스코틀랜드를 포본으로 따르고 있다면, 수학교사 출신인 기 르라트는 플로멜랑에 디스틸리 데 메니르를 열며 브르타뉴의 토착 곡물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곡물이(아니, 엄밀히 말해서 곡물이 아닌 풀이지만) 블레누아(메빌)였다. 브르타뉴의 국민 음식인 그 맛 좋은 팬케이크, 갈레트로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이 재료를 다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르 라트가 알게 되었다시피, 사실 호밀도 메밀에 비하면 다루기 쉬운 원료다. 메밀은 매시툰에서 콘크리트처럼 굳어지기 쉽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고 그 노력의 결과로 스파이시함과 상쾌함을 갖춘 복합적 풍미의 에뒤를 빚어냈다. 한편 브르타뉴 남부의 섬 벨릴르에는 카에리스가 가동되고 있어 브르타뉴 4인방을 이루고 있다.
알자스 소재의 5개 증류소에서는 켈트를 의식하지 않은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알자스는 과일 스피릿 증류에서 오랜 전통을 간직한 지역이다. 그에 따라 알자스동부 내륙지방의 위스키들은 약한 과일 풍비가 도는 가벼운 스타일에 절제미가 있는 편이다. 이 지역에서는 곡물의 풍미에 주력하고 있어 오크는 배경 역할에 머물고 있다.
오와르트에는 최대 규모의 생산자 메이에 증류소가 2007년부터 쭉 위스키를 만들어오면서 현재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몰트이스키를 내놓고 있다. 또 19세기 중반부터 과일 스피릿을 증류해 온 오베르네의 레만가문이 설립한 엘사스 브랜드도 2008년부터 꾸준히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레만 가문의 이 증류소는 현재 위스키에 대한 접근의 폭을 넓혀 숙성 시에 프랑스의 화이트와인 캐스크(보르드, 소테른, 코토 뒤 레이옹의 캐스크)만을 쓰고 있다. 프랑스 화이티와인 캐스크의 영향을 느껴보고 싶다면 위베라크의 엡에서 증류한 원주를 드니앙스에서 AWA라는 브랜드로 병입한 제품을 찾아보길 권한다.
프랑스의 위스키를 개괄적으로 둘러보면 아주 다양한 접극법과 풍미를 아우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 예로 코르시카섬에서는 피에트라 양조장과 와인 메이커 겸 증류주 제조업체인 도멘 마벨라가 서로 합세해 그 느낌이 보리 베이스의 샤르트뢰즈(증류주에 여러 가지 약초를 첨가한 프랑스술)에 더 가까워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향기의 위스키 여러 종을 생산하고 있다. 먼저 만지(화이트와인)을 담았던 통과 파트리모니오 프티 그랭드 모스카텔을 담았던 통에서 매링하는 방식이 그 비법이다.
미샤르에서도 돋보이는 향기를 빚어내고 있는데, 이런 향기는 주로 단일종의 양조용 효모를 사용하는 덕분이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닐 테지만 숙성에서는 이 증류소 주변의 리무쟁 숲에서 벌목해 만드는 오크 통을 사용하나다.
론알프의 고도 900m에 자리 잡은 도멘 데 오트 글라세를 운영하는 프레드 레볼과 제레미 브리카의 머릿속에서는 테루아가 가장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2009년에 설립된 이곳에선 현지에서 재배한 유기농 곡물을 원료로 쓰고, 숙성에 프랑스산 오크를 사용하며, 훈연 처리에 밤나무 목재를 태우는 지역 전통 방식을 활용한다. "몰팅, 발효, 증류, 통제에 대해 프랑스 고유의 방식에 따라 이해한 다음 그것을 위스키에 재해석해 내는 것이 저희의 접근법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뭐든 다 이곳 토양과 이어주려고 해요.
만약 바닷가 지대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위스키를 만들게 될 겁니다."
보리를 과일로 보는 이론을 조심스레 꺼내자 열띤 공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희는 곡물을 말린 과일이라고 여겨요. 저희가 만든 스피릿에서는 꽃과 과일색이 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이런 특색은 생산량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태도로 얻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워시에 알코올이 부족하면 그만큼 에스테르가 더 많아져서 그 곡물 특유의 특색을 발현시켜 줍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 있는 제품, 콩드리유 캐스크에 숙성시키는 범상치 않은 라이 위스키다.
프랑스의 증류주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면 와인 양조에서처럼 오크를 조심스럽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오크를 풍미에 압도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이 아니라 구조감을 받쳐주는 역할로 활용한다. "모든 것의 기반을 토양에 두는 경우라면, 바닐라 풍미를 우려내려 할 이유가 없죠." 레볼의 말이다.
코냑 지방에서 위스키를 만든다고 하면 마치 이단 행위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브뤼네 가문은 2005년부터 코냑을 생산하지 않는 기간동안 곡물을 증류해 지인들과 가족에게 대접해 왔다. 위스키로 전향한 개종자로서 그녀 자신의 말마따나 "비전통적 생산국의 위스키에 점점 큰 관심이 생기고 있다"는 뉴욕의 앨리슨 패텔이 아니었다면 이 코냑의 위스키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혀 있었을 것이다.
켈트의 영혼의 형제들 브르타뉴의 해안지대를 터전으로 삼아 문을 여는 증류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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