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의 증류소는 절벽과 항구에 면한 건물들 사이의 좁은 틈에 끼어 있어 살짝 남몰래 영업하는 곳 같은 인상을 풍겨, 오반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 애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칼빈주의적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인품이 중요한데 일부 사람들은 술이라는 존재는 단연코 존경받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치부한다. 하지만 존과 휴 스티븐슨 형제는 그런 식의 생각에는 개의치 않았던 모양인지, 18세기말 아가일 공작이 집을 짓는 것을 명목상의 '부대조항'으로 내세워 99년의 임대를 제안했을 당시에 그 기회를 활용해, 결국엔 사실상 한 도시를 세우고 양조장까지 세웠다 이후인 1794년, 이 양조장은 면허를 취득한 합법적 증류소로 거듭났다. 적어도 스티븐슨 형제에겐, 위스키는 단연코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이 증류소는 1869년까지, 두 형제에서 그 아들과 손자로까지 대를 이어 운영되었다.
이 서해안 지대에서 위스키 사업에 모험을 걸었던 또 다른 시도들은 교통상의 문제 탓에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오반은 위치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따. 지금도 여전히 교통 요충지여서, 종착역과 페리 항고가 있고 글래스고와 웨스턴아 일스를 잇는 도로의 끝지점 이기도 하다. 현재 오반 증류소는 전형적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증류소다. 양파 모양의 소형 증류기 2대가 웜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논리적 추론상 뉴메이크가 묵직하면서 유황 향이 있을 법하다. 그런데 아니다.
오히려 시트러스 풍미가 확 풍겨 과일 느낌이 강렬한데, 이는 기운을 되찾아 라인 암으로 슬금슬금 넘어가려는 유황 성분을 잡아채기 위해 구리가 잘 준비되어 있도록 증류 작업 중간중간에 증류기에 공기를 쐬며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는 결과다. 웜텁의 온도를 비교적 더 따뜻하게 조정하는 것도 증기와 구리 사이의 대화를 늘려줘 뉴메이크에 잠재된 과일 풍미가 드러나게 해 주고 톡 쏘는 스파이시함을 더해주는데 이 스파이시함에는 짭짤함으로 해석해도 될 만한 오묘함이 있다.
오반 시음 노트
뉴메이크
향 : 과일향, 처음엔 뿌리 계열의 스모키함이 희미하게 다가오다 구운 복숭아 향, 스트러스/ 오렌지 담는 상자향이 난다.. 향기롭고 복합적이며 깊이감도 갖추었다.
맛 : 크리미하고 온화하다. 뒤이어 오렌지껍질 맛이 다가와 혀 전체로 퍼진다.
피니시 : 스모키하다.
8년, 리필우드 캐스크 샘플
향: 흙내음이 돌면서 덜 익은 바나나/ 덜 익은 오렌지, 물푸레나무의 향이 향기롭게 퍼진다. 무게감과 미미한 짭짤함.
맛 : 달콤하고 농후하다. 시트러스 풍미가 몰려든다. 농축미가 있으면서 얼얼하다.
피니시 :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의 스모크 풍미
총평 : 상쾌하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진전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면서도, 기운 왕성한 캐스크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을 만한 힘이 느껴진다.
14년 43%
향 : 깔끔하고 상큼하다. 가벼운 바닐라 향, 약간의 밀크 초콜릿 향, 진한 향신료 특유의 달큰함이 느껴진다. 향기로운 속에 아련한 스모크 향이 어우러져 있다. 말린 과일 껍질 형과 견고한 오크 향.
맛 : 첫맛으로 부드러운 달콤함이 다가오고, 새콤한 맛이 내내 이어진다. 오렌지, 민트, 시럽 풍미가 아주 깔끔하다.
피니시 : 아주 스파이시하고 톡쏜다.
총평 : 깔끔하면서 밸런스가 잡혀 있고, 이제는 잠재된 특색이 드러나고 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애런 10년, 더 벤리악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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