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앵글리아(영국 동부 지역)의 비옥한 평지에 증류소 2곳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2곳 모두 신생 증류소라는 사실이 더 인상적이다. 사실, 영국은 위스키 증류에 열성적으로 뛰어든 적이 없다. 19세기에 런던, 리버풀, 브리스틀에 대규모 증류소들이 가동되긴 했으나 영국의 국민 스피릿은 진이었다.
19세기의 이런 증류소 가동 상황이 2006년부터 재현되기 시작했다. 농경에 종사하던 존과 앤드루넬스토롭(John AndrewNelstrop) 부자가 노퍽에 세인트조지스 디스틸러리를 열면서부터였다. 이후로 2007년부터 증류 기술자 데이비드 피트(David Fitt)는 어떤 것이 영국 위스키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이 증류소는 비교적 작은 공간 안에 1톤 용량의 매시툰 1대, 워시백 3대, 포사이스 증류기 2대가 촘촘히 들어차 있다. 발효는 장시간 저온으로 이루어져 에스테르를 증강시키고, 라인 암이 아래로 꺾인 증류기에서는 달콤하면서 은은한 과일 느낌과 함께 멋진 층을 이루는 풍미의 뉴메이크를 1방울씩 똑똑 흘려 내준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정통적인 제조 방식과 같다. 하지만 피트가 숙성고문을 열고 샘플 위스키를 뽑아내 맛보여 주는 순간 그가 양조 기술자로서 닦아온 노하우가 발휘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몰팅보리, 크리스털 몰트, 초콜릿 몰트, 밀, 호밀을 원료로 쓰고 버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그레인위스키, 3차 증류를 거치고 피트 처리를 하는 몰트위스키, 마데이라 캐스크와 럼 캐스크에서 숙성시키는 위스키다. "저희는 스코틀랜드와 다른 식으로 할 수 있어요. 여기에선 제약이 없어요."
동쪽으로 72km 떨어진 사우스월드에서도 양조업체 애드남스가 잉글랜드의 위스키 리그에 뛰어들어 비슷한 태도를 펼치고 있다. 이 업체에서도 위스키 제조에 양조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자체 배양 효모를 쓰고, 맑은 위트르 만들어 온도 조절이 되는 통에서 3일동안 알코올 함량52%로 발효시킨다. 2가지 매시빌(100% 몰팅 볼, 보리/밀)이 증발탑을 거친 후 고정판이 설치된 단식 증류기로 들어간다. 최근엔 뉴메이크의 알코올 함량을 85%로 낮추었는데 증류 기술자 존 매카지(John McCarthy)는 이렇게 말한다. "88%에서는 위스키가 너무 깔끔했어요. 알코올 강도를 그만큼 낮추면 착향 성분을 더 얻게 돼요."
이곳엔 '안 될 거 없잖아?' 식의 태도도 배어 있다. 오크 통 생산업체 라두에서 미국산과 프랑스산 오크로 만든 와인 캐스크를 2가지 매시빌의 숙성에 활용하고, 비어를 증류해 스피릿 오브 브로드사이드로 출시하고 있는 동시에, 라이 위스키는 현재 숙성 중이다. 영국에서 라이 위스키를?" 못할 거 없죠! 저희는 원하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늦깍이로 꽃피운 영국의 위스키 산업은 동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제 런던은 2014년 1월 기준으로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템스강둑 부둣가 개발지의 틈새 공간을 기점 삼아 다시 위스키 증류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런던 디스틸러리 컴피니의 CEO 겸 증류 기술자 대런 룩(Darren Rook)의 말을 들어보자.
"저희에겐 포부가 있어요. 1903년으로 되돌아가 런던이 스피릿을 만들었던 시대에 싱글몰트 스피릿이 어떠했을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이곳은 위치상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 이 지역은 풍부한 유산을 간직한 곳이에요. 1390년대에 초서가 '증류된 워트'에 대해 언급하는 글을 쓰기도 했던 곳인데, 사람들은 여전히 위스키가 스코틀랜드에서 들어왔다고 믿고 있어요. 한 때 이곳에서는 여러 증류소가 자리해 있으면서 온갖 스피릿을 만들고 있었어요. 저희는 그런 옛 전통을 되살리려고 해요."
다시 이스트 앵글리아로 초점을 돌려서 얘길 이어가 보자. 사실 세인트조지스 디스틸러리는 개업 무렵 넬스트롭 부자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증류소가 지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창문도 없이 증류소를 열었다. 결국 소문으로 돌던 그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증류소의 설립계획은 흐지부지되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컴브리아주에 새로운 꿈이 실현될 순간이 목전에 와 있었다. 더 레이크스 디스틸러리에서 컨설턴트인 앨런 루더포드의 조언을 따라, 철제와 구리 응축기를 번갈아 써서 다양한 특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로자일'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도 너무 과도한 실험은 원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괜한 혼란을 일으킬 소리가 있으니까요. 해마다 미친 3월(Mad March)을 보내며 저희가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태도는 영국의 공통적 맥락이다. 핏의 말처럼 "영국 위스키는 누구든 원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영국 위스키는 누구든 원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영국 위스키의 독자적 정체성이 아니라 모든 증류소의 독자적 정체성입니다. " 그 외에도 웨스트컨트리 소재 증류업체 힉스 앤드 힐리에서 묵묵히 코니시 위스키를 숙성시키고 있는 등, 마침내 영국이 위스키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잉글랜드 시음 노트
H$H 05/11 캐스크 샘플 59.11%
향 : 구운 오크 향이 가볍게 풍기면서, 달콤한 칼바도스의 느낌이 감도는 견과류 향이 깔려 있다. 상쾌하면서도 깊이감이 있고, 꿀 향이 알싸하게 올라오기도 한다.
맛 : 부드러운 꿀맛에 더해, 설탕에 향신료를 넣어 데운 과일차, 베리, 사과의 맛이 퍼진다. 밸런스가 좋다. 거의 베네딕틴 느낌이 드는 허브의 풍미가 있어서 리큐어 특색이 강하다.
피니시 : 배와 향신료의 여운.
총평 : 풍미가 빠르게 훅 전개된다.
EWC 멀티 그레인 캐스크 샘플(알코올 강도는 불명)
향 : 약간의 동유 향에 크리미한 토피와 가벼운 초콜릿 향이 어우러져 달콤하고 풍부하다.
맛 : 초콜릿 특색이 주도하다 이어서 샌달우드, 크리미한 오토, 가문비나무 싹, 가벼운 오일의 풍미가 다가온다.
피니시 : 길고 온화하다.
총평 : 귀리, 밀, 호밀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위스키, 확실히 스카치위스키와는 다르다.
애드남스, 스피릿 오브 브로드사이드 43%
향 : 어두운색 과일, 건포도, 졸인 플럼의 향취가 향기롭다. 한데 어우러져 다가오는 볶음차와 레몬의 향, 몰트 향.
맛 : 체리맛 목 캔디, 플럼 블랙커런트 맛으로 과일 느낌이 강하게 몰려온다. 묵직하면서 중간쯤에 기름진 맛이 약간 드러난다.
피니시 : 가벼운 오크 풍미와 함께 달콤하게 마무리된다.
총평 : 무게감이 있다. 잠재성을 띠고 있다.
차기시음 부호감 : 아모릭 더블 머추레이션, 올드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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