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녹은 좀 별스러운 증류소다. 명칭에서나 속해 있는 지역에서나 노선을 확실히 못 정하고 있는 면이 있어 혼란을 준다. 녹이라는 마을에 있는 녹두 증류소는 1893년에 당시의 유력 블렌딩업체 존 헤이그앤드컴퍼니가 세웠다. 그러다 싱글몰트위스키로 처음 출시될 당시 새로운 주인 인버하우스에서 명칭이 노칸드와 너무 비슷하다고 여긴 결과로 아녹이라는 이름으로 갖게 되었다.
위치는 스페이사이드 경계지에 가깝지만 앞에서 살펴봤다시피 이곳의 경계선은 지리적 타당성을 띠고 있다기 보다 의회에서 제정한 경계를 따르는 것이다. 사실, 이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위스키는 인버하우스의 마스터 블렌드 스튜어트 하베이의 말마따나 "대다수 사람들이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로 여기는 스타일의 전형이다. 그런데 사과 향 도는 그 가벼운 스타일의 위스키에 익숙한 애주가들은 이곳의 뉴메이크를 맛보면 놀랄지 모른다. 유황 성분 때문이다. 이 유황 풍미 뒤로 숨겨져 있는 강렬한 시트러스 풍 풍미는 병에 담길 무렵에야 충분히 발현된다.
다음은 하베이의 말이다. "사실상 올드 풀트니보다 살짝 더 묵직한데 그건 증류기에서의 환류가 더 적고 웜텁이 뉴메이크에 채소 느낌의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이에요. 스카치위스키의 특성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계기는 증류소들이 웜텁을 철거하고 응축기를 설치한 일이었어요. 응축기가 효율성 면에서는 더 좋을 지 몰라도, 유황을 제거해 버려 그 뒤로 숨겨진 무게감과 복합성까지 같이 없앨 소지가 있어요." 이곳에서는 유황이 위스키의 본질을 보여주는 지표다. 요즘은 강한 피트 처리로 변화를 준 다른 위스키도 생산하고 있지만 이 위스키는 현재로선 블렌딩용 원조로만 쓰이고 있다.
글렌글라사는 포트소이라는 예쁜 마을을 옆 바다 절벽에 자리해 있는 것으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운이 좋은 증류소가 아닐까 싶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주도한 19세기 호황기이던 1878년에 설립되었고, 얼마 못 가서 하이랜드 디스틸러스에 합병되었다.
이 19세기의 말에 설립된 증류소들 상당수가 그랬듯, 이 증류소 역시 당시의 첫 번째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블렌딩 업체들은 재고 수준에 균형을 맞춰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비교적 근래에 문을 열어 아직 입증되지 않았거나 숙성된 스피릿들의 깊이감이 떨어지는 증류소들을 폐업시키는 선택을 내렸다.
글렌 글라시는1907년에 물을 닫았고 1950년대에 미국의 주도로 수도가 증가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한동안 제과공장으로 가동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문을 연 것이 1960년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보장되어 있진 않았다. 글렌글라사는 '다루기 까다로운' 스피릿으로 여겨졌다. 블렌딩에서 단체 조직 분위기를 꺼리며 분 편해하는 사람에 비유될 만한 존재였다. 당시에 싱글몰트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면, 그 뒷이야기는 사뭇 달랐을 테지만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치면서 1980년대에 불필요학 여겨지는 증류소들을 가려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글렌글라사는 정리 대상이 되었다. 결국 1986년에 다시 물을 닫으며 그것으로 최후를 맞는 듯했다.
그러던 2007년, 글렌글라사는 구제를 받으며 1년 후부터 제품도 생산해 냈다. 큰 재고 격차를 다루는 일은 어떤 경우든 까다로운 문제지만 이곳에서는 진전 중인 제품과 고품질 캐스크에서 장기 숙성된 특선을 출시하며 영리하게 재고의균형을 맞추어왔다. 2013년에는 주인이 다시 한번 바뀌어 더 벤리악 디스틸러리 컴퍼니의 계열이 된 후 더 벨니악, 더 글렌드로낙과 더불어 잊혔다가 부활하 유서 깊은 증류소로서의 명성을 일구어 냈다. 이상적인 적응이다.
아녹 시음노트
뉴메이크
향 : 양배추/ 브로콜리와 비슷한 느낌의 유황 향이 나지만 자몽과 라임 특유의 경쾌한 느낌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맛 : 입안에서도 다시 유황 향이 난다. 중간 정도의 무게감에 이어, 시트러스류 과일 껍질 풍미가 향긋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피니시 : 깔끔하고 길다. 놀랄 만큼의무게감.
16년 46%
향 : 오크향이 더 뚜렷해졌지만 여러 향기의 진전이 같은 속도로 이우러 지는 느낌이다. 사과꽃, 잘라낸 꽃, 라임, 미미한 박하.
맛 : 달콤하고 오크 추출액 같은 풍미가 전해져 무게감도 생겼다
피니시 : 흙먼지 내음/ 분필 느낌에 이어 12년 제품에서 느껴졌던 푸릇푸릇한 허브 풍미가 다시 느껴진다.
총평 : 상쾌함이 핵심 키를 쥐고 있지만, 여기에 부드러운 질감까지 우군으로 거느리고 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더 글렌리벳 12년, 티니닉 10년, 하쿠슈 12년
글렌글라사 시음노트
뉴메이크 69%
향 : 과일 주스 느낌이 들면서, 와인검과 흡사한 향이 난다. 깔끔함과 달콤함이 주도하는 향 뒤로 잠재된 힘이 느껴진다.
맛 : 아주 약한 단 맛, 톡 쏘는 맛, 물을 희석하면 연한 그린게이지 자두 맛이 깔끔하게 감돈다.
피니시 : 크리미 하면서 살짝 몰티 하다. 팽팽한 느낌
레볼루션 50%
향 :깔끔한 오크 향이 살짝 풍긴다. 단 향에 뜨거운 톱밥의 향취가 섞여 있다. 그린게이지 자두 풍미가 여전히 살아 있고 여기에 바닐라 향이 더해져 밸런스를 이룬다. 물을 희석하면 커런트 향기다 드러난다.
맛 : 오크가 맛을 주도해 바닐린 풍미가 진하지만 바나나와 농익은 생과일의 맛도 느껴진다.
피니시 : 주스 같으면서 조밀하다.
총평 : '진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뉴메이크와의 직계적 연결성.
차기 시음 후보감 : 올트모어, 발블레어 2000
리바이벌 46%
향 : 오크 향과 산화의 느낌, 뉴메이크에서 느껴지던 몰트 향이 중복되었다. 대추야자의 향기, 물을 타면 상쾌함이 돈다.
맛 : 농익은 맛에 더해 추가 숙성에 사용된 셰리 캐스크의 풍미가 은은히 퍼진다. 젖/ 연유에 가까운 풍미.
피니시 : 살짝 마비되는 느낌이 들 정로로 조밀하다.
총평 : 중간 맛이 아주 기분 좋다. 증류소의 개성이 살아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더 글렌로시스 셀렉트 리저브
30년 44.8%
향 : 아몬드와 말린 향기가 강건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숙성된 풍미와 뿌리 덮개의 느낌이 그윽한 농축미를 선사한다.
맛 : 과일 껍질 사탕 절임 특유의 아주 농익고 풍부한 맛.
피니시 : 나이를 살짝 과시하는 마무리다.
총평 : 여러 과일 풍미와 조밀한 질감이 여전히 살아 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카발란 솔리스트, 글렌파클라스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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