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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No.1 싱글몰트" 글렌피딕 (8)

by 주류탐험가K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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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s share, 악마의 몫

 

 

진동하는 위스키 향에 코를 킁킁대던 가이드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옛날에는 위스키를 밖으로 꺼낼 때 숙성고 직원이 몰래 훔쳐 먹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숙성 과정에 자연적으로 증발해 날아가는 위스키를 엔젤스 셰어angel's share, 천사의 몫이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서 숙성고 직원들이 몰래 빼 마셔서 사리진 위스키를 데블스 셰어devil's share, 악마의 몫이라고 불렀단다. 또 위스키를 슬쩍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1979년까지 글렌피딕에선 직원들한테 하루 세 번 위스키를 나눠줬다고 한다. 이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숙성고 직원은 "오해하지 마세요. 이제는 그런 일 절대로 없어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는다.

 

직원들에게 위스키를 나눠주는 전통은 글렌피딕에만 있었던 아니다. 1970년대까지는 거의 모든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숙성하지 않은 스피릿을 직원에게 공짜로 제공했다. 이런 관행과 전통을 스코틀랜드에선 드래밍 dramming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사라진 드래밍은 증류소 직원만이 누리던 특권이자 일종의 복지 혜택이었던 샘이다.

 

영화 <소공녀>와 글렌피딕

증류소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위스키를 직접 맛보는 것이다. 증류소를 돌아다니며 생산 과정을 살펴본 뒤 마시는 위스키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글렌피딕에서는 기본 제품 네가지를 맛을 선보인다. 맨 먼저 나온 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 글렌피딕 12년이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특유의 서양배 풍미가 잘 느껴진다. 가이드는 12년 제품을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12년에 이어 맛본 건 내가 싱글몰트의 기준이라는 글렌피딕 15년이다. 글렌피딕 15년은 언제 먹어도 흐뭇하다. 12년보다 풍미가 복합적이다.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는 글렌피딕 핵심 제품core range 중 고숙성인 18년은 12년이나 15년 제품에 비해 셰리 오크통 비율이 높다. 셰리 풍미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가이드는 18년 제품을 가리키며 "12년과 15년의 큰 형님big brother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석 잔을 마신 뒤에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그랑크루 23년도 시음한다. 이 제품은 아메리칸 오크통과 유러피언 오크통에서 23년 숙성을 마친 뒤 그랑크루급 샴페인을 만들 때 상용한 프랑스산 캐스크에 넣고 6개월 추가 숙성finishing했다.

 

글렌피딕 위스키를 맛보는 내내 전고운 감독의 영화<소공녀>가 떠오른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당 45000원을 받는 주인공 미소, 집은 없어도 위스키 한 모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던 그녀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난 뒤 단골 바에 가서 12000(나중엔 14000원으로 올랐다)하는 글렌피딕 위스키 한 잔을 마셨다. 홀로 바에 앉아 위스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잔을 비우고 나면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겐 위스키 한 잔이 삶의 큰 기쁨과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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