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도 결혼한다?
위스키도 결혼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게 뭔소리인가 싶은 분도 있을 텐데 위스키를 만들 때 매링marrying이라는 공정이 있다. 위스키 업계에서 쓰는 매링은 숙성을 다 마친 여러개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꺼낸 다음 커다란 통에 집어 넣어 섞는걸 뜻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각기 다른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가 조화롭게 어울리게 되면서 풍미가 안정된다.
글렌피딕은 매링 공정을 유난히 강조해왔다. 1974년부터 오크통 숙성이 끝난 몰트위스키를 매링튠에 넣고 다른 위스키와 잘 섞일 때까지 최소 석 달간 기다리는 걸 원칙으로 정했다. 글렌피딕 매링튠 용량은 약 2000리터로 11개 오크통의 위스키를 넣어 섞을 수 있다. 대다수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센 매링을 할 때 청소하기에 편한 스텐인리스 재질을 쓰지만 글렌피딕은 전통에 따라 지금도 나무통을 고집하고 있다.
글렌피딕의 모든 위스키가 매링 공정을 거치지만 그중에서도 15년 제품은 더 특별하다. 글렌피딕 15년은 솔레라solera 시스템으로 불리는 독특한 방법을 적용하고 있어서다. 솔레라는 원래 스페인 셰리 양조장에서 쓰는 숙성 방식이다. 여러 개 오크통을 3단으로 쌓고 파이프로 연결한 뒤 아래쪽에서 숙성을 다 마친 셰리를 꺼내고 나면 빼낸 양만큼 어린 셰리 와인으로 위쪽에 채워넣는다.
글렌피딕에서는 1998년부터 이런 솔레라 시스템을 응용한 방식으로 15년 숙성 제품을 생산해왔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러피언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3만 8000리터 솔레라 통에 solera vat에 넣어 혼합한다. 이렇게 세 가지 위스키 원액이 조화롭게 섞이고 나면 한꺼번에 다 빼내지 않는다. 솔레라 통에 항상 절반 이상을 남겨놓고 나머지만 빼내 병입한다. 위스키 맛을 늘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글렌피딕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대형 솔레라 통이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솔레라 통에 위스키를 채우려고 오크통 여러 개를 일렬로 늘어놓고 마개를 하나씩 열고 있는게 아닌가. 숙성고 직원은 마개를 다 열고 나서는 오크통을 반 바퀴 굴려 위스키를 아래로 콸콸 쏟아낸다. 오크통에서 잠자던 위스키는 수도관처럼 생긴 바닥 수로를 통해 거침없이 흘러간다. "와, 장관이다." 감탄을 터뜨린다. 투어 가이드는 "위스키가 강물처럼 흘러가죠? 영화<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초콜릿이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 같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가이드 표현대로 '강물처럼' 흘러가던 위스키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거름망을 통과해 솔레라 통으로 들어간다.
증류소를 다니다가 이런 광경을 보는 날은 '계를 탄 '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위스키 쏟아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게 아닌데다 진한 위스키 향이 온 사방으로 퍼져 코를 찌르기 때문이다. 위스키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 향이 값비싼 명품 향수보다 더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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