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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스페이사이드 1호 증류소" 글렌리벳 (2)

by 주류탐험가K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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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enlivet이 된 사연

방문자 센터 1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아카이브 월이라는 대형유리 전시장을 볼 수 있다. 증류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위스키 중에 희귀한 것만 모아둔 곳이다. 아카이브 월은 술꾼이라면 준이 돌아갈 만한 올드 보틀로 가득했다. 1974년에 수출용 한정판으로 내놓은 34년  숙성 글렌리벳 위스키나 1959년 부터 숙성에 들어간 캐스크를 2011년에 병입해 출시한 셀러 컬렉션 같은 것이다. 또 아카이브 월 옆에는 창업자 조지 스미스부터 증손자 빌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글렌리벳을 이끌어온 스미스 일가 4명의 초상화와 더불어 '계약서'라는 제목의 문서 한장이 액자에 담겨 있다. 글렌리벳의 영웅들과 함께 벽에 붙어 있는 이 종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야기는 19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1824년 증류 면허취득으로 날개를 달면서 글렌리벳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1840년 에는 두번째 증류소를 세우고 더 많은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글렌리벳은 스코틀랜드를 넘어 런던 주류시장에서까지 진출해 인지도를 높였다. 이 무렵 글렌리벳이 영국 전역에서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대문호 찰스 디킨스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52년 영국 런던에 살던 디킨스가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는 "희귀하고 오래된 글렌리벳"을 맛보라고 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인기가 치솟는 상황에서 블렌디드 위스키 선구자이자 블렌딩의 대부로 불리는 앤드류 어셔 2세는 1853년에 숙성 연수가 다른 글렌리벳 위스키를 섞어 Ushers Old Vatted Glenlivet이라는 제품을 내놨는데 이게 또 대박을 친다. 농장 증류소 두 곳을 풀가동해도 수요를 못 쫓아가게 되자 조지 스미스는 또 한번 확장에 나선다. 1859년 지금 증류소가 있는 곳에 연간 생산 규모 100만 리터에  달하는 초대형 증류소를 짓고 기존의 농장 증류소 두 곳은 폐쇄한다. 

 

국왕과 당대 최고 작가까지 극찬한 위스키 글렌리벳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카치위스키였다. 경쟁자가 있을 수 없었다. 요즘 말로하면 '전국구 원탑'이었다 하지만 글렌리벳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혼자 잘나가자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스페이사이드 다른 증류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글렌리벳이라는 이름을 자기 위스키에 갖다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의도는 분명했다. 품질 좋은 위스키의 대명사가 된 글렌리벳을 라벨에 적어 주목을 끌고 매출도 올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당시 글렌리벳의 명성을 마케팅에 이용한 증류소는 한둘이 아니었다. 벤리악과 벤로막을 비롯해 글렌 엘긴과 글렌 모레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맥캘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맥캘란 옛날 라벨을 보면 'Macallan-Glenlivet'이라고 적힌 걸 볼 수 있다.

 

글렌리벳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844년에 "허락 없이 이름을 가져다 썼으니 명백한 상표 도용"이라고 주장하며 16개 증류소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 그러자 다른 증류소들은 "글렌리벳은 리벳livet 계곡glen을 뜻하는 지명이라서 누구나 허락 없이 쓸 수 있다"라고 맞섰다. 

그렇다면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이쪽저쪽 주장을 다 들어본 판사는 이렇게 판결했다.

"지명인 글렌리벳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관사를 붙인 The Glenlivet은 오직 글렌리벳 증류소에서만 쓸 수 있다. 땅땅땅." 

 

판결이 난 뒤 스페이사이드 모든 증류소는 법원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을 남긴다. 그게 지금 방문자 센터 벽에 전시된 '계약서'라는 문서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글렌리벳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 서류의 행방을 한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생물학자 출신으로 2088년부너 글렌리벳 아카이브를 담당한 그리스에 따르면, 이 문서는 증류소 사무실 선반에 놓인 낡은 가방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크리스는 "가방을 열어 보니 계약서라는 제목의 서류가 구겨진 채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 계약서에 적힌  대로 1884년 판결 이후 글렌리벳은  '단 하나뿐인'이라는 뜻의 정관사 'The Glenlivet'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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