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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셰리 위스키의 명가" 글렌파클라스 (5)

by 주류탐험가K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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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징수원이 상주한 까닭

증류실을 나온 뒤 작은 단층 건물로 들어간다. 여기가 어딘가 싶은 곳이다. 브랜드 홍보대사 커스틴은 "옛날에 세금 징수원이 상주하며 위스키 생산을 감시하던 곳"이라고 했다. 건물로 들어가면 사무실로 쓰는 방 하나가 보인다. 

 

커스틴의 설명에 의하면 이 방의 절반을 세금 징수원이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증류소 매니저가 썼다. 그런데 세금 징수원과 증류소 매니저가 모두 애연가라서 항상 건물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증류소는 화재 위험 때문에 어디든 흡연이 엄격히 금지되는데 '힘 쎈' 두 사람은 예외였다. 

 

이 부분에서 또 궁금증이 생긴 분도 있을 것이다. '왜 옛날엔 세금 징수원이 증류소에 상주했을까?' 스카치 위스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세금 그리고 세금 징수원에 얽힌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스카치 역사 자체가 세금 투쟁의 역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에 처음으로 세금을 부과한 건 1644년 이다. 그 뒤로 200년 가까이 불법 증류가 성행한다. 무거운 세금을 피하려는 불법 밀주업자와 이들을 단속하는 세무 공무원은 쫓고 쫓기는 '고양이와 쥐의 게임'을 벌였다. 숨고 감추고 도망치는 밀주업자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세금 징수원이 다치거나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런 험악한 일은 위스키 세금을 대폭 낮춘 1823년 소비세법 시행으로 점점 사라진다.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불법 증류 단속에 매달렸던 세금 징수원의 역할도 이때부터 바뀐다. 

 

불법 증류 단속에 매달렸던 세금 징수원의 역할도 이때부터 바뀐다.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의 양을 재서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을 피하려 위스키를 몰래 빼내지 않는지 감시하는 게 주된 업무가 됐다. 그러면서 모든 합법 증류소에는 세무 공무원이 상주하는 공간이 생겼다. 

 

증류소에서 세금 징수원에게 숙식을 제공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증류소에서 24시간 감시 활동을 하게 된 세금 징수원은 항상 열쇠 2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하나는 증류한 스피릿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잇는 스피릿 세이프 열쇠였고 또 하나는 오크통을 저장해둔 숙성고 출입문 열쇠였다. 이 2개의 열쇠를 쥐고 잇는 세금 징수원은 증류소에서 가장 힘이 센 거물로 통했다. 이런 막강한 힘을 이용해 상당수 세금 징수원은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샘플이 필요하다며 위스키를 왕창 빼내 마시는 건 애교였다. 몰래 숙성고를 열고 들어가 위스키를 훔쳐 먹기도 했다. 뭐, 이랬으니 담배 정도야 맘껏 피우지 않았겠는가?

 

커스틴은 "특별한 걸 보여주겠다"며 세금 징수원이 상주했던 사무실 옆방으로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 그림이 잔뜩 붙어있다. 증류소에 웬 미술 작품을 전시해놨나 의아하겠지만, 2000년에 글렌파클라스가 딱 600병만 출시한 40년 숙성 Scottish Classic 시리즈 라벨 그림이다. 

 

밀레니엄 한정판 라벨 제작을 위해 스코틀랜드 화가 3명이 그린 이 그림은 스코틀랜드 대표 문인 3명의 작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3명의 문인은 '가장 위대한 역사 소설가'로 추앙받는 월터 스콕과 [보물섬]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리고  <올드랭사인>을 작사한 '위스키 시인' 로버트 번스이다.

 

그래서 Scottish Classic 라벨에는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와 스티븐슨의 [보물섬], 로버트 번스의 [졸리 베거스]같은 고전 명작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묘사돼 있다. 40년이란 숙성기간에 더해 라벨의 가치도 높다보니 글렌파클라스 Scottish Classic은 경매 사이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귀품이 됐다. 낙찰 가격도 한 병에 1000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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