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 라우터? 풀 라우터?
세분 공정을 살핀 뒤에는 당화 mashing가 이뤄지는 곳으로 이동한다. 당화는 분쇄한 몰트를 뜨거운 물과 섞어 워트 wort(맥아즙)를 뽑아내는 공정이다. 당화실에 들어가자 거대한 당화조(매시튠 mashtun)가 눈에 들어온다. 글렌파클라스 당화조는 16.5톤짜리 초대형이다. 지름만 10미터에 달한다. 맥캘란이 2018년 새 증류소를 지으면서 17톤짜리 당화조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이게 업계 최대 크기였다고 한다.
당화조 지붕에 달린 창을 열어 내부를 살펴봤다. 수십 개의 날이 수직으로 달린 회전 팔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분쇄된 몰트(그리스트)와 물이 잘 섞일 수 있도록 저어주기 위해서다. 이처럼 수직 날이 달린 회전 팔을 장착한 당화조를 라우터 튠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글렌파클라스 당화조는 현대식 라우터 튠 중에서도 세미 라우터 튠으로 분류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하실분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외 위스키 서적은 물론이고 위스키 전문 사이트에도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니 이 기회에 알아두면 좋을 거 같아 핵심만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대식 당화조인 라우터 튠에는 글렌파클라스에서 쓰는 것과 같은 세미 라우터가 있고 또 풀 라우터 가는 것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회전 팔과 날의 높낮이 조절이 되느냐 안되느냐이다. 세미 라우터 튠은 높이 조절이 안 되지만 풀아우터 튠은 가능하다. 그래서 당화조에 투입한 몰트 양에 따라 위로 올리 수도 있고 낮게 할 수도 있다. 풀 라우터 튠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맥캘란을 비롯해 상당수 증류소는 이 방식을 채택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미 라우터 튠을 쓰는 곳도 많다.
평균 106시간 발효
글렌파클라스에는 발효조 12개가 있다. 모두 스테인리스 재질이다. 각각의 최대 용량은 4만 5000리터이다. 하지만 실제 발효할 때는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하기에 그보다 훨씬 적게 채운다. 글렌파클라스 발효 공정을 살펴보며 가장 놀란 건 발효 시간이다. 증류소 생산 공정을 총괄하는 디스틸러리 매니저 칼럼 프레이저는 평균 발효 시간이 106시간에 달한다 한다. 칼럼 프레이저는 길게 발효하는 이유에 대해 "과일과 풀의 풍미를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100% 직접 가열 방식
글렌파클라스는 전통적으로 큰 증류기를 써왔다. 지금도 1차 증류기 용량이 2만 6500리터, 2차 증류기는 2만 1200리터에 달한다. 2차 증류기 크기가 웬만한 다른 증류소 1차 증류기보다 크다. 또 1,2차 증류기 모두 환류를 증가시키는 보일 볼이 달려 있다. 보일 볼이 달린 대형 증류기를 총 6대(1차 증류기 3대, 2차 증류기 3대) 가동한다. 하지만 증류기 크기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건 가열 방식이다. 글렌피틱 편에서 설명했듯이 거의 모든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는 간접 가열로 증류한다. 증류기 내부에 설치된 관에 뜨거운 증기를 흘려보내 간접적으로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증류기 바닥에 바로 열을 가하는 직접 가열 방식을 쓰는 스코틀랜드 증류소는 글렌피딕과 스프링뱅크, 글렌파클라스 정도뿐이다. 그중에서도 글렌파클라스는 유별나다. 글렌피딕과 스프링뱅크는 증류기 일부만 직접 가열하지만 글렌파클라스는 모든 증류기를 직접 가열 방식으로 돌린다. 다시 말해 글렌파클라스는 '100% 직접 가열'이다.
직접 가열을 역사가 오래 됐다. 옛날엔 모든 증류소가 다 직접 가열 방식으로 증류했다. 오래전에는 나무를 때서 증류기를 가열했고, 이후에는 기름을 썼다. 지금은 환경 규제로 더 이상 석탄을 쓰지 못해 그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반면에 간접 가열은 19세기말에 등장한 현대화된 방식이다. 1880년대 스카파오와 글렌모렌지가 도입한 뒤 퍼지기 시작해 거의 모든 스코틀랜드 증류소가 간접 가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간접 가열이 대세가 된 건 그만큼 직접 가열에 단점이 많아서다. 일단 직접 가열은 불 조절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증류기 바닥이 시커멓게 타버릴 수 있다. 열을 골고루 전달하기도 힘들다. 바닥 열기로 구리가 마모돼 증류기 수명까지 짧아진다. 무엇보다 간접 가열에 비해 연료비가 더 든다. 이렇게 단점이 많은데도 글렌파클라스는 왜 직접 가열을 고집하는 걸까?
직접 가열 방식을 고기 굽는 데 비유하는 전문가가 많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려놓으면 단백질과 당분이 반응해 갈색으로 변하고 감칠맛이 더해지는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당분만 혼자서 반응해 캐러멜화가 진행된다. 그런데 직접 가열로 증류기를 돌릴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증류기 바닥에 직접 열을 가하면 온도가 최대 섭씨 650도까지 올라가면서 워시(발효액)에 있는 당분과 단백질이 구리 표면에 달라붙어 색이 변하고 다양한 풍미를 만들어 낸다.
위스키 전문 사이트 스카치위스티닷컴에서는 "이렇게 생성되는 화합물 강누데 대표적인 게 푸르푸랄이고 이 성분이 증가하면 캐러멜과 견과류 풍미가 강해진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글렌파클라스 위스키를 마셔보면 흔히 달고나 맛이라고 하는 토피 견과류, 그리고 캐러멜 풍미가 잘 느껴진다. 증류소에서는 이런 풍미가 직접 가열 방식 때문에 생긴 거라고 단언한다. 디스틸러리 매니저 칼럼 프레이저는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 글렌파클라스는 100% 직접 가열로 증류하기 때문에 토피와 개러멜 같은 특유의 풍미가 셍긴다.
직접 가열이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맛과 향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칼럼 프레이저에 따르면, 글렌파클라스는 1980년대에 간적 가열로 바꾼 적이 있다. 하지만 가열 방식을 바꾸자 스피릿(증류액) 풍미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6주 만에 다시 직접 가열로 되돌려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직접 가열 증류기는 겉으로 볼 때는 간접 가열 증류기와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다르다. 열을 고르게 전달하기 위해 바닥이 불룩하게 돼 있다. 또 간접 가열 증류기에 비해 구리 바닥도 훨씬 두껍다. 무엇보다 1차 증류기에는 워시가 증류기 바닥에 눌어붙어 타는 걸 막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달려 있다. 폭 30센티미터의 무거운 구리 그물로 바닥을 긁어내는 장치이다. 모터로 작동하는 회전 팔에 매달려 돌아가는 이 구리 그물을 러미저(뒤집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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