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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벤리악 (1)

by 주류탐험가K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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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창업자 인생

스페이사이드 로시스에서 엘긴으로 이어지는 A941번도로 주변에는 증류소가 많다. 글렌로시스, 롱몬, 벤리악에 이어 글렌 엘긴과 글렌 모레이도 이 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특히 벤리악은 도로 옆에 바로 붙어 있다. 벽에 커다랗게 BENRIACH이라고 적혀 있어서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벤리악 증류소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주변이 온통 들판과 농장이다. 증류소 옆에도 돼지 키우는 농장이 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 역사를 살피다보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창업자가 많다. 벤리악을 세운 존 더프도 그렇다. 위스키 작가 찰스 맥클린이 쓴 [Sprit of Place]에 따르면, 존 더프는 원래 펍을 운영하며 글렌드로낙 증류소 매니저로 일했다. 1876년에는 지역 상인들과 연합해 글렌로시 증류소를 운영했지만 얼마 못가서 동업자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 뒤 존 더프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민을 간다. 당시 남아공 트란스발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돼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존더프는 여기에 증류소를 차렸지만 사업이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으로 건너간다. 다시 증류소를 짓고 재기에 나섰는데 또 망하고 만다. 거듭된 실패에 존 더프는 1892년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애버딘에 있는 증류소에 취업해 돈을 모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3년 롱몬 증류소를 설립한다. 

 

롱몬은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때마침 불어온 스카치 바람덕분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존 더프는 1897년 롱몬 바로 옆에 두번째 증류소를 짓는다. 바로 벤리약이다. 롱몬 위스키 생산을 더 늘리고 롱몬에 몰트도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지었기에 벤리악의 원래 이름은 롱몬 2Longmorn 2 Distillery였다. 

 

불과 0.5마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두 증류소(롱몬1, 롱몬2)는 철길로 연결됐다. 증류소에서만 쓰는 철길을 통해 벤리악(롱몬2)에서 생산한 몰트를 롱몬(롱몬1)까지 디젤기관차로 실어 날랐다. 롱몬과 벤리악으로 이제야 빛을 좀 보나 싶었던 존 더프. 하지만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언급한 패티슨 사태가 터지면서 경영은 급격히 악화됐다. 존 더프는 1899년에 두 증류소를 팔고 스카치 업계를 떠난다. 

빌리 워커와 브라운 포맨

벤리악 증류소는 파란만장한 창업자 인생을 닮았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존 더프가 물러난 뒤 증류소는 위스키 생산을 멈춘다. 이때부터 1965년까지 벤리악은 오로지 몰트를 생산해 롱몬 증류소에 공급하는 몰팅 공장 역할만 한다. 

 

그러다가 1965년 글렌리벳이 증류소를 사들이면서 오랜만에 재가동에 들어간다. 이 때 건물도 새로 짓고 증류 설비도 고체한다. 1977년 글렌리벳이 씨그램으로 넘어가면서 벤리악도 씨그램 자회사 시바스 브라더스 소속이 된다. 하지만 2001년 거대 기업 페르노리카에 편입된 뒤 벤리악은 다시 위스키 생산을 중단한다. 

 

이렇게  벤리악이 휴업에 들어간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스카치 업계 '미다스의 손' 빌리 워커다. 빌리워커는 2004년 남아공 투자자들과 함께 벤리악을 인수해 그해 9월부터 생산을 재개했다. 빌리 워커와 함께 부활한 벤리악은 2016년에는 잭 다니엘스를 갖고있는 미국 주류 기업 브라운 포맨 품에 안긴다. 다소 복잡한 증류소 역사를 1965년부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65년 글렌리벳 →1977년 씨그램(시바스 브라더스) →2001년 페르노리카(시바스 브라더스) →2004년 빌리워커 → 2016년 브라운 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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