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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벤로막 (1)

by 주류탐험가K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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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루프와 찰스 도이그

스코틀랜드 증류소에 가면 하늘로 솟아 있는 굴뚝 지붕을 자주 보게 된다. 탑처럼 생긴 지붕이라고 해서 이름이 파고다 루프이다. 원래 이 지붕은 몰트 건조실 굴뚝에 설치했다. 몰트를 말릴 때 나오는 연기를 빼내고 바깥 공기가 들어가게 만드는 환풍구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플로어 몰팅을 하는 곳이 거의 사라지면서 파고다 루프는 제 기능을 읽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멋지고 아름다워서 대부분 증류소에선 지금도 파고다 루프를 그대로 달아놓고 있다. 스카치 증류소 상징이 된 파고다 루프는 19세기 후반 찰스 도이그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했다. 그렇기에 파고다 루프를 도이그 환풍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고다 루프로 유명한 찰스 도이그는 당대 최고의 증류소 건축가였다. 앞서 탐험한 증류소 중에서도 그가 설계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글렌파클라스를 비롯해 탐듀, 올트모어, 벤리악 등이 모두 찰스 도이그 작품이다. 스페이사이드 말고도 달위니, 발블레어, 애버펠디, 올드 풀트니, 탈리스커, 글렌킨치에 이르기까지 스코틀랜드 전역의 수많은 증류소를 찰스 도이그가 디자인했다. 실력이 뛰어나다보니 19세기 후반에 증류소를 새로 짓거나 화장할 때 거의 무조건 찰스 도이그한테 작업을 맡겼다.

 

일부 자료에서는 찰스 도이그한테 작업을 맡겼다. 일부 자료에서는 찰스 도이그가 설계한 증류소가 56군데라고 돼 있다. 하지만 찰스 도이그가 운영했던 회사 기록을 확인해보면 10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매각, 휴업, 매각, 휴업

벤로막 증류소는 빨간 벽돌 굴뚝과 새하얀 건물로 유명하다. 이 증류소 역시 찰스 도이그가 디자인했다. 스카치 유행 막바지였던 1898년 찰스 도이그는 캠벨타운에서 증류소를 운영하던 던컨 맥컬럼과 주류 거래상 브릭만F.W.Brickmann의 의뢰를 받아 벤로막 설계에 들어간다. 지금 방문자 센터에 전시돼 잇는 최초 도면을 보면 당시 찰스 도이그는 건물 구조에서부터 당화기나 증류기 같은 설비까지 꼼꼼하게 그려놓은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설계대로 건물을 다 지은 뒤에도 벤로막은 10년 동안이나 증류소를 가동하지 못한다.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에도 등장하는 게 패티슨 사태이다. 이 희대의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벤로막 공동 창업자 브릭만은 패티슨과 위스키 거래를 하고 있었다. 1898년 12월 패티슨이 파산하자 브릭만은 당시 돈으로 7만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다. 결국 벤로막은 건물만 지어놓고 1909년까지 단 한 방울의 위스키도 만들지 못한다. 그 뒤로 벤로막의 역사는 한마디로 '매각→휴업 →매각 →휴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툭하면 가동이 중단돼 이 과정을 다 적는 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의미 있는 역사가 다시 시작된 건 한참 세월이 흐른 1953년이다. 이때 벤로막은 새 주인을 맞게 되는데 그게 거대 주류 기업 디아지오의 전신 DCL이었다. 증류소 재벌 DCL은 스페이사이드의 숨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던 벤로막을 인수한 뒤 대대적인 혁신에 착수한다. 1966년 설비를 현대화하고 1974년에는 확장 공사를 통해 생산량을 늘렸다. 하지만 스카치 공급 과잉과 보드카 같은 화이트 스피릿의 인기로 불황이 찾아오면서 1983년에 다시 가동을 멈춘다. 그렇게 10년이 또 흐른뒤 에야 벤로막은 스코틀랜드 최대 독립병입 회사 고든 앤 맥페일을 만나 새롭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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