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장인이 위스키 테이스팅하는 방법
데니스 말콤이 일하는 사무실로 가서 테이스팅을 한다. 메이저 그란트 초상화가 걸린 방에는 글렌 그란트 10년부터 18년까지 핵심 제품이 준비돼 있다. 보통 다른 증류소에선 방문객한테만 위스키를 맛보게하고 설명을 해주는데 데니스 말콤은 달르다. 자신도 직접 한 모금씩 모두 맛보며 향과 맛을 세세하게 표현한다. 62년 경력 장인은 테이스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유심히 지켜본다.
가장 눈에 띈 건 데니스 말콤이 물을 제법 많이 타서 음미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물을 섞지 않고 니트로 마시거나 물을 타더라도 스포이트로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게 정석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데니스 말콤은 잔에 따른 위스키 1/3에 달하는 물을 타서 테이스팅을 한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데니스 말쿰은 "나는 물을 충분히 타서 희석을 해야 향이 오히려 잘 느껴진다"라고 한다. 위스키 테이스팅에는 정석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맨 먼저 맛보는 글렌 그란트 10년은 과일 풍미가 지배적이다. 데니스 말콤은 "서양배와 사과 같은 과수원 과일에 말린 과일 맛이 약간 느껴진다"라고 한다. 이어서 맛보는 12년 제품에 대해서는 "10년에 비해 더 달콤한 과일 향이 난다"면서 음식으로 비유하면 "애플파이 맛 같다"라고 표현한다. 10년과 12년에서 서양배와 사과 풍미르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면 15년은 색깔이 확실히 다르다. 서양배가 사과 대신 오렌지 향이 느껴지고 크림 풍미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데니스 말콤은 "15년은 셰리 캐스크를 섞지 않고 오로지 퍼스트 필 버번 배럴만 썼기 때문"이라며 "알코올 도수도 50%라서 더 강력하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는 18년을 테이스팅한다. 데니스 말콤은 "앞서 마신 세 가지에 비해 꽃 향이 풍성하고 알싸한 풍미도 돋보인다"고 한다.
데니스 말콤은 테이스팅을 하면서 글렌 그란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려준다. 그는 "글렌 그란트는 내 영혼의 집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한다. 이어서 "나는 이 증류소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증류소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글렌 그란트에서 태어나 글렌 그란트에서 죽는게 나의 운명"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데니스 말콤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글렌 그란트의 전통, 글렌 그란트의 DNA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 전통과 DNA는 1840년부터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고 항상 미래를 내다본다. 하지만 뿌리와 유산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지금의 글렌 그란트 역시 그 뿌리와 유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뿌리와 유산, 전통과 DNA.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핵심 가치만큼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한마디는 큰울림으로 다가온다. 데니스 말콤의 말처럼 글렌 그란트가 이 가치를 지켜나간다면 10년, 20년, 아니 100년 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무 발효조와 정화기 달린 증류기로 달콤하고 과일 향 풍부한 위스키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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