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캐스크를 고르는 비법
글렌 그란트에는 전통 더니지 숙성고 11개와 현대식 선반형 숙성고 2개가 있다. 3단까지만 쌓는 더니지 숙성고 11곳에 저장된 오크통은 1만 1000개였다. 선반형 숙성고 2곳에는 총 6만개의 캐스크가 숙성중이다. 숙성고에 있는 캐스크는 200리터 배럴과 250리터 혹스헤드, 그리고 500리터 벗 사이즈까지 총 세 가지였고 세 번까지만 재사용한다.
데니스 말콤이 안내한 곳은 11개 더니지 숙성고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희귀한 캐스크가 많은 곳이었다. 지난 2021년 글렌 그란트는 데니스 말콤 위스키 인생 60년을 기념해 증류소 역사상 최고 숙성 연수인 60년 제품을 내놨다. 그때 이 위스키를 꺼낸 5040번 캐스크도 이곳에 있었다. 데니스 말콤은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보이진 않겠지만 1958년과 1955년, 그리고 1953년 빈티지 캐스크도 여기 저장돼 있다."고 말했다. 1953년 빈티지라면 올해(2023년)로 숙성 연수가 70년이 넘어가는 초고숙성이다. 만약 이걸 지금 꺼내 병입한다면 가격이 얼마나 나갈지 궁금하다.
초고가 희귀 캐스크가 즐비한 탓에 숙성고 내부는 마치 교도소처럼 돼 있었다. 캐스크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게 철창으로 완벽히 막아놨다. 곳곳에 CCTV까지 달아 촐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데니스 말콤에게 위스키가 잘 숙성된 좋은 캐스크를 고르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데니스 말콤은 50여 년 전 자신을 매니저로 발탁한 더글러스 맥색이 전수해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데니스 말콤에 따르면, 당시 맥색은 매년 1월이 되면 숙성고에 들러 캐스크 상태를 점검했다. 이떄 맥색은 캐스크를 바닥에 일렬로 늘어놓고 하나씩 마개를 연 다음 구멍에 '훅'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나서 코를 킁킁거리며 향을 맡았다.
데니스 말콤은 "그렇게 하면 캐스크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면서 약간의 압력이 발생해 향을 보다 더 잘 느낄 수 있다. 맥색에게 배운 이 방법을 나도 50년 째 써 먹고 있다"고 말하며 웃는다.
데니스 말콤은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좋은 캐스크를 써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글렌 그란트는 매우 운이 좋다"라고 했다. 데니스의 설명을 오약하면 2006년 증류소를 인수한 캄파리는 글렌 그란트를 최고급 브랜드로 키우려고 캐스크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캄파리가 미국 켄터키 와일드 터키 증류소도 갖고 있어서 버번 캐스크는 와일드 터키 숙성에 사용한 캐스크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가져온다. 데니스 말콤은 "캄파리는 돈이 많다. 글렌 그란트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최고 품질의 캐스크를 살 여유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환상적인 증류소 정원
티나 터너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다 그래미 어워드만 10번 넘게 받은 티나 티너가 지난 2009년 글렌 그란트 증류소를 찾아왔다. VIP손님인 니타 터너에게 데니스 말콤은 생산 공정을 보여준 뒤 증류소의 빅토리아식 정원을 구경시켜줬다. 티나 터너는 정원을 산책하고 뒤편에 있는 백 번 계곡까지 올라가 거기서 글렌 그란트 한잔을 마셨다. 그때 티나 터너는 빼어난 정원 경치와 환상적인 위스키 맛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티나 터너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글렌 그란트 정원은 메이저 가든으로 불린다. 창업자의 아들로 증류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메이저 그란트가 1886년에 이 정원을 꾸몄기 때문이다. 풍류와 낭만을 즐긴 메이저 그란트는 증류소 부지에 대저택을 짓고 살면서 정원을 크고 아름답게 가꿨다.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고 온실까지 만들어 복숭아나 포도, 멜론 같은 과일도 재배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비탈에는 오크통을 보관하는 비밀 금고를 놔두고 손님을 데려와 위스키 한잔을 대접했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스타일로 꾸민 정원은 넓기도 어찌나 넓은지 정원사만 15명에 달했다고 한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개울이 흐른다. 왼쪽으로는 커다란 호수도 보인다. 더 올라가니 푸른 잔디밭이 나타난다. 곳곳게 사과나무가 빨간 열매를 맺고 있다. 여기가 위스키 만드는 곳인지 아니면 야외 식물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넓고 멋졌다. 모든 게 충만하게 아름답다.
정원풍경에 빠져 탄성을 터뜨리며 걷다보면 티나 터너가 위시키를 대접받았다는 백 번 계곡에 도착한다. 꽃과 잔디, 나무로 가득한 빅토리아 정원도 대단하지만 시원한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내리는 풍광도 환상적이다.
비탈진 계곡 움막에는 글렌 그란트 10년, 12년, 15년, 18년이 사이좋게 놓여 있다. 데니스 말콤은 이중에서 18년을 집어들더니 한 잘을 따라준다. 그러고 나서 계단을 타고 계곡 위로 성큼 성큼 올라가더니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낸다.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꺼내 맛볼 때 쓰는 코퍼독이다.
데니스 말콤은 기다린 줄을 풀어 코포독을 계곡으로 늘어뜨린 뒤 이걸로 물을 길어올려 가져온다. 피트 때문에 황토 빛깔에 가까운 계곡물을 위스키에 따라주면서 데니스는 "이 물을 타면 훨씬 맛있을 것"이라고 한다. 데니스 말콤과 기분 좋게 '짠'을 하고 계곡물을 글렌 그란트 위스키를 맛본다. 그 순간 "와우"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더없이 경탄스러운 맛이다. 티나 터너가 왜 이 계곡에서 위스키를 마신 뒤 감탄사를 연발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데니스 말콤은 비밀 장소가 하나 더 있다며 계곡 위로 안내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거기엔 이 정원을 만든 메이저 그란트가 오크통을 숨겨놨던 위스키 금고가 있다. 메이저 그란트의 보물 창고였던 이 금고 철장 안에는 지금도 오래된 캐스크 하나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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