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넘은 제분기
글렌버기 증류소에는 당화조나 발효조, 증류기 같은 설비가 한 개 층에 다 있다. 설비를 한곳에 모아놔서 제조 공정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다. 이런 효율적인 공간 배치는 지난 2004년에 이뤄졌다. 당시 글렌버기는 430만 파운드(약 70억원)를 투자해 건물을 새로 짓고 설비도 현대식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면서도 바꾸지 않은 게 있다. 150년 넘은 로프테우스 제분기이다.
브랜드 매니저 펠리시티는 "이게 스코틀랜드에 남아 있는 프로테우스 제분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제품이다. 150년이 넘었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 잘 돌아간다." 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들 중 70~80년에서 100년 정도 된 포르테우스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포르테우스는 아마 유일할 것이다. 역시 포르테우스는 '제분기의 롤스로이스'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독특한 몰트 분쇄 비율
흔히 몰트를 제분기로 분쇄한다고하면 밀가루나 쌀가루 빻듯이 온전히 가루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몰트 분쇄를 그렇게 하는 증류소는 없다. 곱게 갈아서 100%가루로 만들면 당화할 때 물이 몰트의 당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없어서다. 그래서 증류소에서 분쇄를 마친 몰트를 보게 되면 껍질(허스크)과 거칠게 갈린 몰트(그릿), 곱게 갈린 가루(플라워) 이 세가지가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껍질 20%에 거칠게 갈린 몰트 70%, 곱게 갈린 가루 10%가 되도록 조정한다.
다시 정리하면 '분쇄 몰트(그리스트)= 껍질(허스크)20%+ 거칠게 갈린 몰트(그릿) 70%+ 곱게 갈린 가루(플라워) 10%'인 것이다. 대다수 증류소가 이 비율로 분쇄하기 때문에 2:7:1을 몰트 분쇄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글렌버기나 녹듀, 스카파 같은 곳은 이 황금비율을 따르지 않는다.
분쇄 몰트 중에서 껍질 비중을 30%로 늘리고 거칠게 갈린 몰트는 60%로 줄인다. 결국 글렌버기 증류소의 몰트 분쇄 비율은 '껍질 30%+거칠게 갈린 몰트 60% + 가루 10%'이다.
글렌버기나 스카파, 녹듀에서 껍질 비중을 30%로 높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몰트 껍질이 당화 과정에서 일종의 여과 장치,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껍질이 많아지면 더 맑고 투명한 워트(맥아즙)를 얻어낼 수 있어서다.
껍질 비중을 늘려서 맑고 투명한 워트를 뽑아내면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걸까?
스카치 업계에서는 당화를 마친 워트를 두 가지로 나눈다. 몰트 가루가 섞여 탁하고 흐린 워트와 맑고 투명한 워트이다. 중요한 건 맑은 워트인지 탁한 워트인지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탁하고 흐린 워트로 발효하면 곡물이나 견과류 풍미가 많은 워시가 나온다. 반면에 맑고 투명한 워트는 곡물 풍미 대신에 깔끔하고 가벼운 풍미를 이끌어낸다. 이런 점 때문에 각각의 증류소에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워트 탁도를 여러 방법으로 조절한다. 예를 들어 매우 맑은 워트를 지향하는 녹듀 증류소 같은 곳은 껍질 비중을 30%로 올려 몰트 분쇌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화를 다 마친 뒤에도 별도 여과장치로 또 한번 곡물가루를 걸러낸다.
반대로 몰트 풍미가 있는 탁한 워트를 원하는 곳에서는 껍질 비중을 15%로 줄이기도 한다. 글렌버기 브랜드 매니저 펠리시티는 "우리는 가벼운 풍미의 위스키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3:6:1이 황금비율"이라면서 "이 비율대로 몰트가 분쇄되고 있는지를 일주일에 두 번씩 샘플로 검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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