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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글렌버기" (2)

by 주류탐험가K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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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위스키

발렌타인은 한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오랜 세월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고급 위스키의 대명사였다. 월간<현대경영>에서 국내 500대 기업 최고 경영자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발렌타인은 18년 연속 'CEO가 사랑하는 양주 1위'에 올랐다. 

 

발렌타인을 좋아한 건 성공한 사장님들뿐만이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도 이 위스키를 아꼈다. 월간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발렌타인 30년을 너무나 좋아해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뿌렸다고 한다. 김종필 전 총재나 박태준 전 총리 같은 유력 정치인도 발렌타인을 즐겨 마셨다. 특히 김종필 전 총재는 "먹다보면 17년인지 30년인지 구별이 안 돼서 그냥 17년 먹는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이렇게 '힘센' 분들이 즐기는 위스키라는 인식 때문에 한국 시장 판매량은 어마어마하다.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1년 당시 1년 동안 생산된 발렌타인 17년  세 병 가운데 한 병(37.5%)이 한국에서 팔렸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판매액 기준으로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번째로 발렌타인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발렌타인의 심장 글렌버기

스페이사이드 북쪽 해안가에 자리한 글렌버기는 발렌타인의 심장으로 불린다. 밀튼더프, 글렌 토커스와 함께 발렌타인의 핵심 몰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스페이사이드 엘긴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글렌버기에 도착한다. 생산 시설 앞에 표지판 하나가 서 있기에 다가가서 살펴봤다. 

 

페르노리카 소속자매 증류소 스카파, 밀튼터프, 글렌토커스, 그리고 발렌타인의 고향 에든버러까지의 거리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표지판에 서울이란 글자와 8463킬로미터라는 거리도 함께 적혀 있는게 아닌가. 뉴욕, 파리, 도쿄는 당연히 없다. 발렌타인을 유난히 사랑하는 한국의 수도만 따로 적어둔 것이다. 발렌타인이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이 적힌 표지판이 반가워 한참을 보다가 증류소로 들어간다. 브랜드 매니저 펠리시티 화이트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펠리시티는 증류소 주변이 내려다보이는 꼭대기 층으로 안내하더니 잔디 마당에 있는 건물부터 가리켰다. 그러면서 "바로 저기서 글렌버기의 역사가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펠리시티에 따르면 이곳에 처음 증류소가 생긴건 지금으로부터 210여 년 전인 1810년이다. 당시 윌리엄 폴이라는 농부가 농장에서 불법 증류를 시작했다. 지금 증류소 잔디밭에 잇는 석조 건물이 바로 그때 지은 것이다. 증류소 이름은 1878년에 이르러 킬른 플랫에서 지금의 글렌버기로 바뀐다. 16세기에 지은 버기성이 근처에 있어서 그 이름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글렌버기는 어떻게 해서 발렌타인의 심장이 된 걸까? 글렌버기와 발렌타인을 연결한 사람은 스카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지미 바클레이 였다. 벤리니스 증류소 출신인 지미는 1909년 글래스고로 건너가 업계 거물이던 피터 맥키와 함께 일했다. 1919년에는 동업자와 손잡고 조지 발렌타인 아들이 운영하던 발렌타인 회사를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발렌타인 매입 직후 지미는 큰 어려움에 처한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돼 공식적인 수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미는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무허가 주점, 스파크이지 여러곳을 고객으로 확보하 뒤 캐나다를 통해 발렌타인을 밀수출한다. 

 

당시 발렌타인 위스키(지금의 발렌타인 파이니스트)는 납작한 사각형 병에 담겨 있어서 서류 가방에 넣어 몰래 반입하기 에 유리했다. 금주법 기간에도 위스키를 미국에 꾸준히 팔 수 있게 되자 지미는 발렌타인 원액을 생산할 몰트 증류소 몇 곳을 매입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글렌버기였다. 

 

이렇게 해서 1927년부터 발렌타인 핵심 몰트 증류소가 된 글렌버기는 1930년대 발렌타인 브랜드와 묶여 캐나다 기업 하이램 워커로 넘어갔다가 영국계 얼라이드 도멕을 거쳐 2005년부터 페르노리카 소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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