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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위스키 이야기 "글렌버기" (1)

by 주류탐험가K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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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위스키의 탄생

1822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상점에 13살 소년이 견습생으로 취업한다. 조지 발렌타인이란 이름의 소년은 식료품과 와인을 팔던 상점에서 5년 동안 일한다. 19살이 된 1827년에는 자기 가게를 차려 독립한다. 장사 수완이 뛰어나 사업은 번창한다. 1831년에 조지 발렌타인은 두번째 가게를 연다. 5년 뒤엔 상류층 고객이 많은 목 좋은 곳으로 가게를 확장해 옮긴다. 부자 단골 손님이 늘어나자 조지 발렌타인은 1844년부터 무료 배송서비스도 도입한다. 

 

상점에서 반경 10마일(16킬로미터)이내에 있는 고객한테는 집까지 물건을 배차로 배달해줬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없던 시절에 지금의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배송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물건만 고르면 힘들게 들고 올 필요가 없게 되자 상류층 고객은 너나 할 것 없이 조지 발렌타인 가게로 몰려들었다. 

 

장사로 성공한 조지 발렌타인이 위스키 제조에 뛰어든 건 1850년대이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숙성 연수가 다른 몰트위스키를 섞어서 판매하는 게 1853년에 처음 허용된다. 1860년에는 스피릿 법이 통과되면서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블렌디드 위스키를 제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블렌디드 시대가 도래하자 조지 발렌타인은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와 실험에 몰두한다. 이때 그를 도운 사람이 '블렌디드 위스키의 아버지' 혹은 '블렌딩의 대부'로 불리는 앤드류 어셔 2세 였다. 이렇게 친구인 앤드류 어셔의 조언에 힘입어 조지 발렌타인이 탄생시킨 위스키가 지금 세상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리는 스카치 발렌타인이다. 

 

발렌타인 위스키는 나오자마자 단골고객 입소문을 타면서 상류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창업자 조지 발렌타인이 세상을 떠난 1891년부터는 두 아들이 물려받아 사업을 더 키웠다. 발렌타인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1895년에는 글래스고를 방문한 빅토리아 여왕이 왕실 인증을 뜻하는 로열 워런트를 하사했다. 

 

1983년에는 스코틀랜드 문장원에서도 품격있는 신뢰를 상징하는 헤럴딕 암즈 문장을 수여했다. 지금도 발렌타인 위스키에 박혀 있는 이 문장에는 위스키를 만드는 네 가지 요소인 보리, 물 증류기 오크통과 함께 '모든 인류의 친구'라는 뜻이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거위가 지킨 발렌타인 숙성고

발렌타인은 거위를 모델로 내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195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발렌타인 회사에서는 스코틀랜드 덤바턴에 14에이커(1만7000평)에 달하는 숙성고 단지를 마련했다. 그런데 숙성고를 다 짓고 나자 도둑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이 됐다고 한다.

 

CCTV같은 보안 장치가 없던 시절이었다. 경비원을 고용해 24시간 지키려고 했더니 인건비가 문제였다 이런저런 방안을 논의하던 차에 숙성고 토목기사가 아이디어를 낸다. 그는 "청력도 좋고 밤에 시력도 좋은 거위를 기르자"라고 말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발렌타인에서는 거위 6마리를 데려와 스카치 경비대로 이름 붙이고 숙성고 주변에 풀어놨다. 그렇다면 거위가 숙성고를 제대로 지켰냈을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기만하면 꽥꽥 소리를 쳐서 도둑을 다쫓아냈다. 잡풀을 먹어치워 숙성고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해줬다. 암컷은 때때로 알을 낳아 직원들 영양 공급까지 해줬다. 발렌타인 거위 경비대 활약상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영국 전역으로 알려졌다. 거위가 24시간 철통 경비를 하는 발렌타인 숙성고는 "영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란 말까지 나왔다. 

 

발렌타인의 거위가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자 발렌타인에서는 숙성고를 지키는 거위를 100마리로 늘렸다. "발렌타인의 보디가드는 거위"라는 광고도 제작해 큰 화제를 뿌렸다. 홍보 모델 역할까지 한 거위 경비대는 2012년까지 발렌타인 숙성고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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