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된 가죽으로 만든 케이스
1786년 12월 메타 카타리나라는 배가 최상급 러시아 순록 가죽을 싣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났다. 이탈리아 제노바Genova로 가던 메타 카타리나는 항해 도중 폭풍우를 만난다. 배는 급히 항로를 바꿔 영국 해협인 플리머스 사운드 plymouth Sound로 대피했다. 12월 12일 밤 10시. 엄청난 바람이 해협으로 휘몰아 쳤다. 메타 카타리나는 바다를 떠돌다 바위에 부딪쳐 난파한다. 선원 6명은 탈출해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배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메타 카타리나의 행방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거의 200년이 흐른뒤였다. 1973년 10월 수중탐사를 하던 잠수부가 진흙 바닥에 깊이 처박힌 메타 카타리나호를 우연히 발견한다. '영국 역사상 가장 힘든 수중 고고학 프로젝트'로 불린 발굴이 시작됐고 이 험난한 작업은 33년 동안 계속돼 2006년에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침몰한 메타 카타리나 화물칸에 실려 있떤 순록 가죽은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바다 밑에서 완벽히 보존돼 있었다. 난파선에서 건져낸 가죽은 비싼 값에 판매됐다. 그중 일부는 수제 구두 제작 업체 조지 클레버리G.J. Cleverley에서 가져갔다.
영화 <킹스맨>에서 주인공들이 신고 나온 '킹스맨 구두'로 유명한 업체다. 조지 클레버리는 이렇게 희귀한 18세기 가죽으로 뭘 만들었을까? 수제 구두도 제작했지만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발베니의 40년 숙성 제품(2014년 출시) 케이스를 만들 때 이 가족을 썼다.
위스키 애호라라면 발베니가 왜 40년 제품 케이스 제작을 조지클레버리에 맡겼는지 짐작할 것이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성껏 구두를 만드는 조지 클레버리처럼 발베니도 수제 장인 정신을 표방하는 증류소이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증류소 풍경
발베니는 글렌피딕 창업자 윌리엄 그랜트가 1892년에 세웠다. 윌리엄 그랜트가 글렌피딕을 설립한 게 1887년이니까 5년 만에 증류소를 하나 더 지은 것이다. 그 뒤로 창업자 후손이 글렌피딕과 함께 독립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회사(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소속인 글렌피딕과 벨베니는 거리도 가깝다. 차로 가면 5분도 안 걸린다. 하지만 두 증류소는 규모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싱글몰트 1등 글렌피딕이 워낙 거대해서 발베니는 상대적으로 아담하게 느껴진다. 또 글렌피딕은 조경이나 미관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발베니는 꾸밈이 없다. 건물이나 설비가 고색창연한 옛 증류소 느낌 그대로이다. 증류소를 안내한 발베니 홍보대사 찰스Charles Metcalfe는 "가장 최근에 건물을 지은 게 1960년대"라면서 "우리는 페인트가 벗겨지면 벽에 칠만 다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자 센터를 나와 걷다보니 연못이 눈에 띈다. 증류소 직원들이 '발베니 댐 Balvenie Dam'이라고 부르는 인공 연못이다. 증류소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런 연못은 단순히 보기에 좋으라고 만든게 아니다. 연못에도 역할과 기능이 있다. 연못에 역할이 있다고? 그게 뭘까? 응축기 condenser를 돌릴 때 사용한 냉각수는 응축이 끝나고 나면 섭씨 80~65도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그대로 배출해서는 안 된다. 차갑게 식혀야 다시 냉각수로도 쓸 수 있고 수원지인 강으로 내보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증류소에서는 응축기에서 나온 물의 온도를 떨어뜨리려고 일단 연못으로 흘려보내 식히낟. 이처럼 물을 식히기 위해 만든 증류소 인공 연못을 냉각 연못cooling pond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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