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리네스 산은 스페이사이드의 중심점이다. 케언곰 대산괴(大山塊)의 최북단 외좌층(外座層)으로, 이 지역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 정상에 오르면 일대의 풍경이 쫙 파악되어 남쪽으로 크롬데일과 글렌리벳, 북쪽으로 로시스와 엘겐, 동쪽으로 더프타운과 키스까지 훤히 보인다. 벤 리네스의 그늘 바로 아래 지역인 이곳 증류소 밀집지는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스타일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크라겐모어(Cragganmore)
1823년 이후 시대에 증류 기술자가 직면했던 문제 중 하나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 방법이었다. 밀조 시대에는 산악 길이 확실한 장점이었을지 몰라도 새로운 시장과의 빈약한 교류는 대다수 신생 업체들에게 장애물이어서, 1869년에 스트라스스페이 철도의 건설로 더프타운과 보트 오브 가튼을 잇고 , 퍼스와 그 중심지대의 선로와 연결되는 철도 노선이 생기면서 운이 바뀌었다. 벤 리네스 밀집지 내에서 남들보다 앞서서 이런 이점을 활용한 증류 기술자는 존 스미스(John Smith)였다. 그는 1869년에 발린 달록 역 옆에 크라겐모어 증류소를 세웠다.
존 스미스는 거구의 남자였는데 어떤 며에서는 그런 체격이 그의 진면목을 깎아내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몸집에만 쏠려 혁신적 증류 기술자로서의 천재성이 조명받지 못했다. 글렌리벳의 조지 스미스와 친척 사이였던 그는 그곳에서만이 아니라 달루안과 맥켈란에서도 책임자로 일하다 남쪽의 클라이데스데일(위쇼)로 갔다. 이후에 스페이사이드로 돌아와 잠깐동안 글렌파클라스를 임대해 쓰다 마침내 스페이 강 옆의 땅을 임대하게 되었다.
현재 이 증류소에서는 스미스가 위스키 제조에 취했던 접근법은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이곳에 증류소를 세운 이유는 실용적인 차원이었지만, 깊이 살펴보면 증류 기술자로서의 뛰어난 창의성이 발휘된 부지선정이기도 했다. 당시의 그는 다른 사람들이 쓰던 다양한 증류기를 이미 접해본 상태였다. 더 글렌리벳에서는 가벼운 풍미를, 글렌파클라스에서는 더 묵직한 풍미를 탐구했고, 클라이데스데일에서는 3차 증류의 세계를 체험했다. 이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위스키를 만들어볼 차례였다.
크라겐모어의 초반 공정은 꽤 통상적인 편으로, 가볍게 피트 치리를 한 몰트를 목재 워시백에서 장시간 발효시킨다. 하지만 스미스의 천재성이 가장 확실히 느껴지는 곳은 바로 증류장이다.
이곳의 워시 스틸은 라인 암이 급격히 꺾인 각도로 웜텁으로 이어진다. 스피릿 스틸은 상단이 백조의 목 모양이 아니라 평평한 형태라 긴 라인암이 측면에서 튀어나와 완만한 각도로 이어져 있다. 이런 증류 체계의 핵심은 환류에 있다.
스미스는 대체 어떤 스타일의 스피릿을 만들어내려 했던 걸까? 증류장을 보면 볼수록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대형의 워시 스틸은 환류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 이는 곧 가벼운 스피릿이 만들어진다는 암시이지만, 라인 암이 아래쪽으로 급격히 꺾여 있다는 건 대화가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막는다는 얘기다. 또 라인 암이 차가운 웜텁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최종 결과물이 묵직한 스타일로 나온다는 얘기다. 스피릿 스틸을 보면 훨씬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 스피릿 스틸에서는 알코올 증기가 평평한 상단에 부딪히며 환류되어 돌아가 끓어오르는 로우 와인에 섞인다. 라인 암이 증류기의 맨 위쪽에서 갈라져 나가는 구조라, 특정 풍미들만 생겨난다. 또 길쭉한 라인 암이 완만한 각도로 기울어져 내려간다는 건 구리와의 대화가 비교적 길게 이어진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구리와의 대화를 늘리는 구조라는 결론이 내려지지만, 증류기의 크기가 작고 웜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결론에 모순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모순적인 설계를 했던 걸까? 스미스는 할 수 있는 한 복합적인 스피릿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래서 크라겐모어는 당혹감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감동적이기도 하다. 스미스 같은 이들은 뭣도 모른 채 그냥 되는대로 비어를 가열했던 것이 아니라 혁신가이자 실험가이자 개척자였다. 현재, 크라겐모어에서는 유황냄새/ 고기 느낌을 특색으로 띠는 뉴메이크를 1년 내내 만들고 있다. 뉴메이크의 이런 유황 냄새 이면으로는 복합적 숙성의 특색이 엿보인다. 온갖 가을 과일과 발린 달록의 어두운 숲 속 잎사귀들 사이로 순간순간 비쳐드는 석양빛이 연상되는 그러 특색이.
크라겐모어 시음노트
뉴메이크
향 : 농축된 향, 고기(양고기 육수), 유황 냄새가 느껴지고, 그 뒤로 달콤한 시트러스와 여러 과일의 풍미가 이어진다. 희미 한 견과류 향.
맛 : 살짝 훈연 풍미가 돌다 고기 / 유황의 풍미가 풍기며 힘 있고 강한 인상을 띤다. 아주 농후하다. 걸쭉하고 오리리하며, 옛 스타일이다. 무게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진다.
피니시 : 검은색 과일과 유황의 풍미.
8년, 리필 우드 캐스크 샘플
향 : 응집된 과일 향, 약간의 구운고기/ 오븐 팬 냄새. 민트, 낙엽, 이끼의 향이 강하고, 파인애플과 블랙베리의 향도 약간
감돈다. 물을 섞으면 유황냄새가 풍긴다.
맛 : 농익은 맛과 부드러운 질감, 개성이 부각되어 있다. 복합적이면서 묵직하다. 과일 풍미가 주도하면서 오크 풍미가
그 뒤를 받쳐주고 있다.
피니시 : 향이 닫힌 듯 드러나지 않고 희미한 피트 풍미가 있다.
총평 : 숙성의 특색이 벌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2년 40%
향 : 농익은 여러 가지 가을 과일과 블랙커런트 향, 약간의 가죽 향, 묵직한 꿀 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가벼운 훈연 향도 느껴진다.
맛 : 풀바디에 과일 풍미, 졸인 소프트 프루트 맛과 약간의 호두 맛, 깊은 맛이 느껴지고 질감이 부드럽다.
풍미가 열려 잠재된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니시 : 가벼운 훈연 향
총평 : 유황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고, 미티함이 갖가지 과일의 풍부한 풍미와 조화를 이룬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더 클렌드로낙 12년, 글렌고인 17년
더 디스틸러스 에디션, 포트 피니시 40%
향 : 농축된 과일, 야생 과일 잼의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무난하고 달콤하며 풍부하다.
맛 : 감칠맛이 있고 살짝 기름지면서, 밑에서 미티한 풍미가 떠받쳐 준다. 농후한 과일 풍미와 더불어 단맛이 아주 약하게 느껴진다. 물을 섞으면 복합적 풍미가 피어난다.
피니시 : 아주 가벼운 훈연 향.
총평 : 크라겐모어의 가을 특유의 특색들이 포트 같은 풍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차기 시음 후보감 : 더 발베니 21년, 툴리바딘 포트 캐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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