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린에서 북쪽으로 글렌시의 고지를 넘어 1시간 거리에 있는 디사이드다.
방문자들은 무성한 암녹색 숲이 펼쳐지고, 로열 워런트(왕실 조달 허가증)을 부여받은 데다 꽃 줄 장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 도시의 풍경을 접하면 중산층의 점잖은 삶이 깃든 곳으로 넘겨짚기 쉽지만, 사실 이곳은 예전부터 은신처로 유용하게 이용되어 왔다. 높다란 산길들은 가축 몰이꾼들이 소들을 풀을 먹여가며 쉽게 중앙 시장으로 데려가게 해 주었으나, 이 길은 위스키 밀거래 업자들이 스페이사이드나 디사이드의 어두 침침한 보시에서 남쪽으로 갈 때 자주 애용하던 루트이기도 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이 여기에 발로럴 성을 지은 이유도 이 지역의 외진 특성 때문이었다. 애도 중이던 여왕은 이곳을 찾아 은거하곤 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열 로크나가
이곳 오지에는 오두막집, 실링, 보시, 오래된 증류소 들이 여기저기 멋스럽게 흩어져 있다. 비밀스럽고 밀폐된 지형 탓에 길을 잃기 쉽고, 모든 것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디사이드 북쪽의 첫 번째 증류소는 소유주이자 그 자신도 밀주를 나들어 팔던 제임스 로버트슨이 크래시의 강변에 합법 증류소를 세운 이후 불법 증류 업자들의 방화로 소실된 적이 있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로열 로크 나가 증류소는 술에 보르도 산 레드와인 클라레를 섞어 마시길 좋아했던 빅토리아 여왕에게 로열 워런트를 하사 받았던 곳으로 1845년 무렵에 세워졌다. 이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예상할 법하지만, 디사이드 너머로 숨겨진 아주 작은 고원에 터를 잡고 있는데 인근의 화강암으로 만든 두툼한 벽은 운모와 장석의 얼룩들이 비 내릴 후 햇살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난다.
디아지오 산하 증류소 중 가장 작은 로열 로크나가의 소형 증류기 2대와 증류기의 웜텁을 보고 나면 묵직한 스타일을 생산하는 곳이려니 추정할 만하지만 이곳은 글렌 엘긴과 다소 비슷하게 구리와의 대화를 과도할 만큼 연장시키는 기술을 활용해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동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느긋한 접근법을 취한다. 증류기를 일주일에 2번만 가동하는가 하면 구리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증류 중간중간에 휴식을 준다. 웜텁은 식지 않게 관리하는데, 이 역시 구리의 가용성을 늘리려는 것이다. 유황 대신 풀의 풍미를 끌어내고 있지만 로크나가에 내재된 고유특성상 푸릇푸릇한 풀이 아닌 마른풀의 느낌이 나고, 바로 이 마른 풀 풍미가 증류소의 부지와 어쩔 수 없이 쉽게 간과되고 마는 중간 맛의 견고함을 살짝 상시시켜 준다. 이런 풍미 특성은 장기 숙성에 접합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디사이드 북쪽에서는, 모든 것이 겉보기와는 사뭇 다르다.
로열 로크나가 시음 노트
뉴메이크
향 : 마른 건초, 가벼운 배의 향, 썩을 정도로 익은 과일 향에 희미한 훈연 향이 어우러져 있다. 무직함과 풀 향.
맛 : 뚜렷한 훈연 풍미가 상쾌하고 깔끔하게 다가와 주임을 견고하게 잡아준다. 혀를 살짝 적셔오는 질감
피니시 : 깔끔하다.
8년, 리필우드 캐스크 샘플
향 : 오크 통에서 우러나온 연한 바닐라 / 화이트 초콜릿의 향. 건초/ 밀짚의 특성은 여전하지만 과일 향은 이제 부드러워지는 중이다. 가벼운 훈연향
맛 : 처음엔 감귤류 느낌이 밴 사과 맛이 나 의외의 경험을 선사하고, 이어서 밀짚의 단맛이 난다. 풍미가 차츰 풍부해지는 중에도 여전히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피니시 : 배와 비슷한 풍미가 감돌고, 마른풀의 풍미가 다시 다가온다.
총평 : 웜텁의 영향으로 풀 느낌이 밴 몰트 추출물에 깊이 감이 더해졌다.
12년 40%
향 : 깔끔하다. 잘라낸 풀의 향기에 이어지는 은은한 곡물 향. 상큼하게 다가오는 진한 상쾌함. 점차 번져오는 마른 건초, 헤이즐넛, 레몬, 커민 씨 향.
맛 : 예상보다 더 달큼하다. 라이트 바디와 미디엄 바디의 중간이지만, 드라이함(몰트/ 건초)과 달콤함(프랄린/ 과일) 사이에 밸런스가 잡혀 있다.
피니시 : 온화하고 깔끔하다.
총평 : 상쾌하고 매력적이다.
차기 시음 후보감 : 글레고인 10년, 야마자키 12년
셀렉티드 리저브 NAS 43%
향 : 셰리의 힘 있는 기운이 느껴진다. 말린 과일의 달콤한 향기와 더불어 럼과 건포도 향이 약간 있고, 당밀의 향도 살짝 느껴진다.
맛 : 과일 케이크 맛고 살짝 톡 쏘는 올스파이스 맛. 풀의 풍미는 사라졌지만 스피릿의 깊이감이 오크 풍미를 잘 감당해 내고 있다.
피니시 : 긴 여운 속에서 느껴지는 달콤함
총평 : 증류소의 개성이 부차적 역할에 머물게 하는 대범함이 특징인 익스프레션
차기 시음 후보감 : 글렌피딕 18년, 달루안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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