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km 거리에 떨어진 밀튼더프와 마찬가지로, 글렌버기 역시 당시 소유주 하이람 워커가 로몬드 증류기를 설치해 놓았던 증류소다. 로몬드 증류기는 1955년에 알라스테어 커닝햄(Alastair Cunningham)이 고안한 것으로, 두꺼운 목 부분 안에 이동 가능한 베플판(조절판)이 장착되어 있다. 예전부터 이런 식의 증류기 설계가 더 묵직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생각이다.
원래 커닝햄은 이런 설계를 통해 구상했던 것은 하나의 증류기에서 뽑아내는 증류액의 풍미 폭을 넓히려는 것이었다. 이론상으론, 베플판(조절판)을 조절하거나 물로 냉각시키거나 물을 적시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도 다양한 유형의 환류를 일으켜 다양한 풍미를 생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문제는 ,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시 스틸을 가동하면 베플판이 고형물로 덮여 , 구리의 가용성을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최종 스피릿에 탄내가 나게 될 소지도 있었다. 결국 로몬드 증류기는 치워지거나, 폐물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현재 가동 중인 로몬드 증류기는 단 2대다. 스캐퍼에 있는 증류기는 그나마 베플판(조절판)을 제거해서 통상적인 워시 스틸로 가동 중이고, 브룩라디이 일명 '어글리 베티(Ugly Betty)'는 얼마 전 설치한 것으로 인버레븐(Inverleven) 증류소에서 가동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밀튼더프와 글렌버기는 디아지오의 그렌로시와 마녹모어의 판박이다. 시바스 브라더스의 증류소 책임자 알란 윈체스터도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두 곳의 스피릿을 교대로 돌아가며 쓰고 있긴 하지만 저는 글렌버기가 더 달콤하고 풀 풍미가 강한 스타일이라고 봐요'
글렌버기는 현재 '글렌크레이그(Glencraig)'를 뽑아내던 로몬드 증류기의 자퓌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약간 가차 없다 싶을 정도로 개방형으로 설계된 지금의 증류소 구조는 1823년 혁신 이후 위스키가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입증해 주는 증거다. 19세기 흔적은 통행이 붐비는 증류소 부지 부근의 차도 한 가운데에 다소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석조 저장실뿐이다. 이런 글렌버기의 존재는 스페이사이드에 작별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상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준다. 그만큼 글렌버기는 몰트위스키 증류의 심장부이자, 대담하면서도 저평가된 지역이자,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땅이며 원조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미래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는 땅이다. 그 폭넓은 향기, 기술, 철학이 스페이사이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렌버기(Glenburgie) 시음노트
뉴메이크
향 은은한 풀 향, 아마인유 향, 달콤한 향이 아주 깔끔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맛 섬세하고 향기롭지만 혀로 오일리한 질감이 내려 앉는다.
피니시 견과류 풍미의 강렬한 여운. 향기로운 꽃 풍미가 느껴진다.
12년 59.8%
향 옅은 황금색. 풀 내음이 풍기지만, 기운 생생한 오크통 속에서 코코넛 향의 개성이 더 부각되었다.
맛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엔 너무 얼얼하고 강렬한 편이며 물로 희석하면 달콤하고 온화한 맛이 느껴진다. 오크에서 배어 나온 바닐라 꼬투리 풍미. 혀에 살포시 달라붙는 듯한 질감이 흥미로움을 더한다.
피니시 풀과 중국 백차의 풍미.
총평 자기주장이 강한 오크와 스피릿 고유의 달콤함이 잘 조화되어 있다. 향기로운 꽃 풍미가 느껴진다.
차기 시음 후보감 아녹 12년, 링크우드 12년
15년 58.9%
향 황금색. 아세톤, 아몬드 밀크 향이 그윽하다. 가볍고 달콤하면서 깔끔하다.
맛 드라이한 라피아야자 맛과 옅은 바이슨 그라스(들소 풀)의 향기가 동시에 풍기는 풀의 풍미에 이어 소똥 비슷한 기분 좋은 농촌의 향취가 다가온다.
피니시 가벼운 향신료 풍미. 깔끔하다.
총평 온화하고 매력적이다. 향기로운 꽃 풍미가 느껴진다.
차기 시음 후보감 티니닉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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